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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던 아픈 장애인 3시간 혼자 둬 사망…유기치사 무죄
기사 작성일 : 2023-01-24 10:00:38
응급차


[TV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 손현규 기자 = 지적장애인 A(2021년 사망 당시 25세·여)씨는 같은 장애를 앓는 동생과 함께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2012년 부모처럼 따르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할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자매는 피해자 보호시설과 정신병원을 전전했다.

이후 연락이 닿은 아버지와 한동안 같이 살았으나 2019년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왔다.

갈 데가 없던 A씨 자매에게 손을 내민 건 B(26·여)씨였다. 그도 자매와 같은 지적장애인이었고 자매 중 동생과는 고등학교 특수반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였다. 종종 자매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의 언니인 A씨와도 친하게 지냈다.

B씨는 자신의 친척 집에서 자매와 함께 지내다가 2021년부터는 인천 부평에서 오피스텔을 구해 A씨와 둘만 함께 살게 됐다. A씨 여동생은 B씨와 다툰 뒤 집을 나갔다.

A씨는 건강이 좋진 않았다. 2019년 5월부터 우울증과 불면증 약을 복용했고, B씨와 둘이서만 산 뒤에도 갑자기 실신해 119구급차에 실려 간 적이 2번이나 있었다.

의료진은 "24시간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상태"라며 "더 악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B씨와 함께 병원에 다녀온 뒤에도 A씨는 구토하며 실신하거나 많은 코피를 흘렸고, 입에 거품을 무는 날도 잦았다.

2021년 5월 31일 오전 8시. 오피스텔에서 잠을 자던 A씨가 또 입에 거품을 물었다. 심장은 뛰고 호흡은 했지만, B씨가 팔을 잡고 들어 올려도 반응하지 않았다.

B씨는 약속이 있어 오전 11시 30분쯤 A씨를 집에 혼자 둔 채 외출했고, 3시간 뒤에 돌아왔다. 계속 잠을 자는 줄 알았던 A씨는 여전히 의식이 없었고, 이번에는 호흡도 하지 않았다.

B씨는 급히 119에 신고해 A씨를 병원으로 옮겼으나 1시간도 안 돼 숨졌다. 사인은 급성 약물중독이었다.

진술 녹화중


[TV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검찰은 지난해 2월 B씨를 유기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A씨와 장기간 함께 지내며 그의 좋지 않은 건강 상태를 분명하게 알았는데도 집에 혼자 방치하고 외출해 숨지게 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B씨는 법정에서 "언니가 심각한 상태인 줄은 몰랐고 사망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과거에 할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때부터 A씨와 계속 연락한 경찰관은 "A씨와 B씨는 친자매처럼 서로 의지했다"며 "B씨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A씨 자매를 안타까워했고 누구보다 먼저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함께 살던 오피스텔의 관리소장도 "둘은 평소 손을 잡고 꼭 붙어 다녔다"고 기억했고, A씨를 돌본 장애인활동지원사도 "둘이 싸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며 "A씨가 정서적으로 깊게 B씨에게 의지했다"고 증언했다.

인천지법 형사13부(호성호 부장판사)는 유기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4일 밝혔다.

법원은 B씨가 A씨의 위험한 상태를 알고도 방치했거나 외출 후 귀가하면 A씨가 사망할 수 있다고 예측하기는 어려웠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평소 피고인은 A씨가 병원에 갈 때마다 동행했고, 외출할 때는 휴대전화 위치공유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A씨가 있는 장소를 확인하기도 했다"며 "지속해서 A씨와 연락하며 응급상황이 의심될 때는 119에 신고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소 B씨는 지적장애가 있는데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A씨에게 연민을 느끼고 곁에서 나름대로 성심껏 돌봤다"며 "A씨의 생명이 위중한 상태인 줄 알면서도 죽도록 내버려 둘 이유는 없어 보이고 그럴 동기도 찾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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