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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 사람들] ⑬"종다리야, 떼까마귀야~ 공항에 놀러 오면 위험해!"
기사 작성일 : 2023-03-08 07:01:09

[※ 편집자 주 = '공항'은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충만한 공간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주공항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 의미가 각별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지나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으로 이어지는 이 시대에도 '쉼'과 '재충전'을 위해 누구나 찾고 싶어하는 제주의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연간 약 3천만 명이 이용하는 제주공항. 그곳에는 공항 이용객들의 안전과 만족, 행복을 위해 제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는 비록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며 제주공항을 움직이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 이야기와 공항 이야기를 2주에 한 차례씩 연재합니다.]

제주공항 조류충돌예방 작업


[한국공항공사 제주공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 변지철 기자 = 항공기 이착륙 과정에서 새들이 엔진이나 기체에 충돌해 크고 작은 사고로 이어졌다는 뉴스를 우리는 가끔 전해 듣는다.

일명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다.

제주공항에는 이른 새벽부터 밤늦은 시각까지 이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조류충돌예방팀이 있다.

8일 이들 조류충돌예방팀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 "항공기에 오리 1마리 충돌해도 충격 엄청나"

"탕! 탕!"

제주국제공항 주변을 지나다 보면 항공기 이착륙 과정에서 나오는 굉음 외에 난데없이 총소리가 들리곤 한다.

주변에 사격장이 있는 것도, 군부대가 있는 것도 아닌데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총소리에 어리둥절해 하는 관광객도 눈에 띈다.

공항 주변의 총소리는 바로 한국공항공사 제주공항 조류충돌예방팀이 새를 쫓기 위해 발사하는 엽총 소리다.

총으로 새를 겨냥해 맞추는 게 아닌 총소리로 새를 쫓아내는 게 목적이다.

조류충돌예방팀은 제주공항 내 활주로, 유도로, 계류장 등 항공기 이동지역에서 조류와 야생동물을 쫓고 이들의 서식지를 파악해 방제작업을 하며 공항 안전을 지키는 업무를 한다.

야간에 운영되는 광역 방제기


[한국공항공사 제주공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들은 지상 근거리에 새가 있을 때는 엽탄을 사용해 새를 쫓지만, 하늘 높이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새를 쫓을 때는 공포탄을 사용한다.

목적지까지 날아간 뒤 터지는 공포탄은 공중의 새 떼를 쫓는데 훨씬 효과적이다.

엽총 외에도 여러 장비를 이용한다.

새가 싫어하는 음파를 최장 3㎞ 이상 쏘아 보내는 음파 퇴치기를 쓰거나 독수리 모양의 모형을 설치해 맹금류 울음소리를 함께 내보내 공항 내부로 새의 접근을 막기도 한다.

항공기 운항이 멈춘 야간에는 방제약을 150m까지 살포하는 광역 방제기를 사용해 공항 인근에 곤충 등 조류의 먹이가 서식하는 환경이 형성되지 않도록 제어한다.

이렇게까지 해서 새를 쫓는 이유는 뭘까.

항공기가 새와 충돌하는 '버드 스트라이크' 때문이다.

조류충돌은 항공기 이·착륙 혹은 순항 중 새가 동체나 엔진 등에 충돌하는 현상이다.

항공기가 지상에서 천천히 이동하거나 정지한 상태에서 새가 날아와 부딪히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항공기에 새가 충돌할 때 생기는 충격은 어마어마하다.

이착륙 때 시속 300㎞가 넘는 속도로 이동하는 항공기에 오리 한 마리만 충돌해도 기체에 가해지는 순간 충격은 t(톤) 단위가 된다.

제주공항에 독수리가 떴다


(제주= 조류 퇴치를 위해 제주국제공항 활주로 주변에 설치한 독수리 모형. [ 자료사진]

실제로 시속 370㎞로 상승하는 항공기에 900g의 청둥오리 한 마리가 충돌할 때 항공기가 받는 순간 충격은 이 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항공기 동체는 물론, 조종실 유리에 조류충돌이 일어날 경우 그 충격의 여파로 동체는 찌그러지고 조종실 유리는 깨질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은 새가 엔진으로 빨려 들어갈 때다.

엔진의 공기 흡입구는 엄청난 양의 공기를 빨아들이기 때문에 새가 엔진과 충돌하게 되면 화재 등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제주공항에서는 다행히 이러한 큰 사고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국내외 다른 공항에서는 비슷한 사례가 가끔 발생한다.

코로나19 이전인 지난 2019년 8월 15일 러시아 모스크바 동남쪽 '쥬코프' 공항을 이륙한 에어버스 A321 여객기가 이륙 직후 갈매기 떼와 충돌했다.

새들이 양쪽 날개의 2개 엔진에 모두 빨려 들어가면서 1개 엔진에 화재가 발생했고, 다른 엔진도 고장을 일으켰다.

승객과 승무원 233명을 태운 여객기는 엔진을 모두 끈 채 곧바로 1㎞ 떨어진 옥수수밭에 동체착륙했다.

다행히 70여명의 부상자만 발생했을 뿐 사망자는 1명도 나오지 않았지만,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티호찌민 상공서 새와 충돌한 여객기


[ 자료사진]

◇ 공항에 뜬 떼까마귀 위협적…약 2만마리 쫓겨나

제주공항에서 실제로 발생한 조류충돌은 얼마나 될까.

한국공항공사 제주공항에 따르면 2018년 10건, 2019년 8건, 2020년 18건, 2021년 18건, 2022년 21건 등이다.

이들 충돌건수 중 대부분은 항공기가 착륙한 이후 지상에서 이동하던 중 새들이 엔진에 빨려 들어가 정비과정에서 발견되는 경우이며, 항공기 운항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퇴치 및 포획 건수는 2018년 6만3천865마리(포획 765마리), 2019년 7만3천695마리(〃 353마리), 2020년 6만8천960마리(〃 308마리), 2021년 6만5천411마리(〃 205마리), 2022년 7만4천236마리(〃 260마리) 등이다.

제주공항에 나타나는 새들은 황조롱이, 직박구리, 흰뺨검둥오리, 왜가리, 물수리, 댕기물떼새, 매, 중백로, 황조롱이 등 30여 종류에 달할 정도로 다양하다.

이 중 지난해 공항에서 가장 많이 쫓겨난(?) 새는 종다리 2만5천637마리, 떼까마귀 1만9천820마리, 참새 1만4천834마리, 제비 5천155마리 순이다.

항공기 운항에 있어서 참새와 제비와 같은 소형 조류보다는 아무래도 무리 지어 다니는 중대형 조류가 더 위협적이다.

노을 속 떼까마귀


[ 자료사진]

특히, 겨울 철새인 떼까마귀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 중 하나다.

몸길이가 47㎝ 정도인 떼까마귀는 몽골, 시베리아 등지에 살다 추위를 피해 매년 10월께 우리나라를 찾아 3∼4월까지 머물다 다시 북쪽으로 간다.

떼까마귀는 텃새인 큰부리까마귀보다 몸집은 작지만, 군집성이 강해 떼를 지어 날아다니기 때문에 관제탑 관제사들이나 항공기 조종사들이 볼 때 자칫 부딪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조류충돌예방팀 관계자는 "조류 전문가들에 따르면 떼까마귀가 매우 영리하기 때문에 항공기와 충돌하는 경우는 사실상 본 적이 없을 정도"라며 "실제로 공중에 날아다니다가도 항공기가 오면 알아서 흩어져 실질적으로 (예방팀이) 퇴치를 하지 않아도 부딪힐 확률이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육안으로 볼 때 굉장히 위험해 보이고 관제사와 조종사들이 불안해하는 만큼 겨울철 조류충돌 예방 업무 중 가장 집중하는 조류가 떼까마귀"라고 말했다.

제주공항 조류충돌예방팀의 업무는 첫 항공기가 뜨기 전 새벽 5시부터 마지막 항공기가 뜨고 내린 이후까지 15명이 3조 2교대로 이뤄진다.

조류충돌예방팀은 주로 항공기가 내리는 방향의 활주로 인근에서 작업을 하며 새 떼의 위치에 따라 이동한다.

제주공항에 착륙하는 항공기


[ 자료사진]

항공기가 착륙하면서 서서히 낮은 고도로 날아 내려오는 만큼 이륙 항공기보다는 착륙 항공기가 조류충돌에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충돌예방업무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비가 많이 오는 날씨에는 새들이 활동을 잘 하지 않지만, 날씨가 맑고 따뜻할 때는 짝짓기와 먹이 활동 등 새들의 활동이 많아진다.

겨울철 날씨가 좋을 때는 한 낮에 따뜻하게 달궈진 활주로 아스팔트에서 몸을 녹이는 새들이 많아 이들을 쫓느라 예방팀이 애를 먹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새들을 사람의 마음과 뜻대로 관리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은 주변 민가에서 쏟아지는 민원이다.

항공기가 이착륙하는 소음도 참기 힘든데 새를 쫓는 총소리까지는 못참겠다는 항의가 이어진다.

공항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고충은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조류충돌 예방 업무를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조류충돌예방팀은 "제주공항은 민가와 매우 가깝기 때문에 공포탄을 쏘게 되면 바로 민원이 들어온다"며 "조류충돌 예방 업무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민가에서 이해하고 공감하기에는 쉽지 않은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총으로 새를 쏴서 잡는 게 목적이 아닌 쫓는 게 우선이다. 현재 계속해서 새로운 조류충돌예방 방안을 보완하고 도입을 검토하는 중"이라며 "현재로선 승객과 항공기 등 모두의 안전을 위한 업무인 만큼 조금만 더 이해해주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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