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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中과 왕래 재개, 홍콩인들의 딜레마
기사 작성일 : 2023-03-18 09:01:00
홍콩 거리


(홍콩= 윤고은 특파원 = 지난 12일 홍콩 거리의 모습.

(홍콩= 윤고은 특파원 = "지난해 12월만 해도 객실 점유율이 50%도 안 됐는데 올해 중국과의 국경이 열린 후 지금은 거의 80∼90% 수준까지 회복했어요. 호텔에 손님이 많이 늘어나니 좋죠. 외국인도 있지만 대부분 중국 본토인이에요. 그런데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에티켓이 안 좋은 중국인들 보면 너무 싫습니다. 왜 저러나 싶어요."

익명을 요구한 한 홍콩인 호텔리어의 말이다.

홍콩인들이 코로나19로 닫혀있던 중국과의 왕래가 3년 만에 재개되면서 딜레마에 빠졌다.

주머니 두둑한 중국 본토인들이 다시 몰려와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눈살 찌푸려지는 일도 동반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2020년 초부터 3년간 고강도 '제로 코로나'를 시행하면서 홍콩과의 접경 지역도 걸어 잠갔다가 지난 1월 8일 조건부로 다시 열었다. 이어 2월 6일에는 모든 제한을 없애고 양측 간 접경 지역을 전면 개방했다.

이달 초 홍콩 야우마테이의 한 편의점 점원은 가게 문 앞에 "길을 묻는 사람에게는 10홍콩달러(약 1천600원)를 받겠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중국과의 국경이 열린 후 매일 100명 이상이 중국행 버스 매표소가 어디냐고 물어오자 참다못해 그렇게 했다고 한다.

2019년까지 중국행 버스 매표소가 있던 자리에 코로나19 이후 해당 편의점이 들어서면서 벌어진 일이다.

해당 점원은 홍콩 언론에 "지난달 국경이 전면 개방된 후 너무나 많은 본토인이 몰려와 승차권 매표소 위치 등 길을 물어보는데 일부는 정말 너무 무례하게 군다. 나는 그러한 이들을 친절하게 응대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당 안내문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자 중국행 버스 회사가 이전한 매표소 위치 안내문을 거리에 부착했다.

지난달 26일 홍콩 경찰은 34~73세의 9명을 길거리에서 구걸한 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그중 7명은 홍콩 입경 허가증을 가진 중국 본토인들이었다.

홍콩 경찰은 국경 완전 개방 후 홍콩 거리에서 구걸 행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순찰과 법 집행을 강화해 해당 문제의 조기 근절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범죄 조례에 따라 공공장소, 거리, 수로에서 구걸하면 500홍콩달러(약 8만4천원)의 벌금이나 12개월형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콩 침사추이 명품매장 앞 대기줄


(홍콩= 윤고은 특파원 = 지난달 18일 홍콩 침사추이 명품거리 일부 매장 앞에 대기줄이 늘어선 모습.

국경 재개방과 함께 가장 먼저 들어온 이들은 중국 보따리상이다. 홍콩에서 질 좋은 물건을 사서 중국의 높은 수입 관세를 피해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되팔려는 이들 보따리상은 홍콩 상인들에게는 3년 만에 돌아온 반가운 손님이지만 일반 주민들에게는 불청객이다.

특히 국경 검문소인 로우, 록마차우와 각각 지하철로 한 정거장 떨어져 있는 셩수이 지하철역 주변은 팬데믹 이전까지 수십년간 중국 보따리상들의 집결지였다.

좁은 홍콩 보도를 가로막은 채 길 위에서 커다란 짐 가방에 물건을 쓸어 담는 이들을 두고 현지 주민들은 비위생, 보행 방해, 물건 싹쓸이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대놓고 싫어한다. 2019년 반정부 시위로 반중 정서가 고조됐을 때는 이들 보따리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홍콩 당국은 보따리상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중국 광둥성 당국과 문제 해결을 위해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팬데믹 이전 2018년 1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중국 선전 세관은 홍콩과의 국경 검문소를 통해 약 9천건의 병행 수입을 적발했다. 총 7천500만 홍콩달러(약 126억원) 규모다. 같은 기간 홍콩 세관은 분유 불법 반출과 관련해 5천500명을 체포하고 2만6천kg의 분유를 압수했다.

다시 국경이 열리자 중국 소셜미디어 위챗에는 보따리상들의 '배달꾼' 모집 광고가 온통 퍼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5일 홍콩 관광청은 2월 홍콩을 찾은 여행객이 코로나19 팬데믹 발발 이후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1월의 세배인 총 146만명이 찾았는데 그중 110만명 이상이 중국 본토에서 온 여행객으로 나타났다.

중국과의 국경이 열리면서 홍콩의 금융, 부동산, 미용, 의료 서비스에 심지어 점집까지 활기를 띠고 있다고 홍콩 언론은 전했다.

하지만 '홍콩의 중국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일반 홍콩 주민들은 몰려오는 중국인들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닌 듯하다.

홍콩인 네이선 씨는 "2019년 시위 당시 본토인들 때문에 집값과 물건값이 뛰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며 "방역이 풀린 것은 좋은데 여기저기 본토인들이 다시 늘어난 것을 보니 기분이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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