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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 사람들] ⑭"신의 영역, 최선 다할 뿐"…제주공항기상대의 하루
기사 작성일 : 2023-03-22 08:00:30

[※ 편집자 주 = '공항'은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충만한 공간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주공항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 의미가 각별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지나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으로 이어지는 이 시대에도 '쉼'과 '재충전'을 위해 누구나 찾고 싶어하는 제주의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연간 약 3천만 명이 이용하는 제주공항. 그곳에는 공항 이용객들의 안전과 만족, 행복을 위해 제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는 비록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며 제주공항을 움직이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 이야기와 공항 이야기를 2주에 한 차례씩 연재합니다.]

제주공항


[ 자료사진]

(제주= 변지철 기자 = 공항에도 기상청이 있을까?

그렇다.

일반인에게 낯설 수 있지만, 기상청 소속의 책임운영기관으로 항공기상청이 지난 2001년 3월 9일 정식 개청한 뒤 올해로 설립 22주년을 맞았다.

항공기가 하늘을 날 수 있도록 국내 모든 공항과 하늘길의 날씨를 365일 24시간 쉼 없이 관측하고 예보하는 기관이 항공기상청이다.

제주국제공항에도 항공기상청 소속 제주공항기상대가 업무를 보고 있다.

22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항공기 이착륙 가장 위협하는 날씨 요소는?

"저희 업무 목적은 항공기 안전입니다."

제주공항에서 만난 오임용 제주공항기상대장은 "항공기 안전이 확보되면 항공기 운항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된다. 즉, 안전한 항공기 운항을 위한 모든 기상정보를 수집, 생산, 제공하는 업무를 한다"고 말했다.

기상청이 공항 날씨 정보를 제공해도 될 텐데 굳이 항공기상청을 따로 두고 예보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기상청이 제공하는 기상정보와 항공기상청이 제공하는 기상정보는 여러 면에서 엄연히 차이가 있다.

제주공항기상대


(제주= 변지철 기자 = 제주공항기상대 사무실 입구 모습. 지난 3월 9일 촬영.

기상청의 일반적인 기상정보는 각종 기상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공익을 증진하는 데 목적이 있지만 항공기상정보는 순전히 항공기 운항의 안전성·정규성·효율성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이 때문에 항공기상정보는 관제사와 조종사, 운항관리사 등 항공업무에 종사하는 특정 대상을 중심으로 전 세계 공통 약어(略語, 줄임말)·형식으로 제공되며, 관측·예보도 공항 일대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매우 세밀하게 이뤄진다.

예를 들어 항공기 이착륙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기상요소는 바람, 시정(視程) 등이다.

항공기는 양력(揚力·뜨는 힘)을 얻기 위해 항상 맞바람을 안고 운항한다.

그런데 바람이 활주로와 같은 방향이 아닌 활주로의 옆 방향으로 불 경우 양력을 얻기가 어려워져서 항공기 이·착륙에 지장을 초래한다.

따라서 공항 예보를 할 때도 항공기 앞면에서 부는 바람인 '정풍', 뒷면에서 부는 '배풍', 옆면에서 부는 '측풍' 등 바람의 방향을 활주로를 중심으로 10도 단위로 끊어 바람의 세기와 함께 정확하게 숫자로 제공해야 한다.

급변풍 발생 원인은 한라산


[제주공항기상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제주공항에는 방향이 급격히 변하는 '급변풍'(wind shear)이 자주 발생한다.

남풍류가 불 때 제주공항은 지형상 한라산 위로 넘어 들어오는 바람과 한라산 양옆으로 돌아들어 오는 바람이 한꺼번에 마주친다. 이때 주변 건물과 오름 등 지형지물, 기압의 차이에 따라 바람이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급변풍은 이착륙하는 조종사가 대응할 만한 충분한 시간·공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발생하기 때문에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지상으로부터 1천600피트(m) 사이에 급변풍이 관측 또는 예상되면 일상적인 기상예보에서 볼 수 없는 급변풍 경보가 공항에 발령된다.

제주공항에서는 연평균 132일 급변풍이 발생한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급변풍 특보가 발효돼 지난 2021년에는 연간 301차례 발령된 바 있다.

이외에도 조종사가 공항 지형지물을 맨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하는 만큼 대기의 혼탁도를 뜻하는 시정 상태는 공항에서 매우 중요한 기상요소다.

강한 바람이 부는 제주공항


[ 자료사진]

구름의 높낮이가 조종사의 시야를 가릴 수 있기 때문에 공항에서는 구름의 높이(雲高, 운고)와 안개 등으로 인한 저시정 상태를 예보하는데 전국 각지의 공항 사정에 따라 각각의 경보 발령 기준이 다르다.

제주공항에서는 구름의 높이가 200피트(m) 이하로 예상되면 운고 경보가, 안개·미세먼지 등으로 인해 시야가 800m 이하로 떨어지면 저시정 경보가 발령된다.

공항에서 발령되는 특보는 태풍, 천둥·번개, 대설, 강풍, 운고, 저시정, 호우 경보 등이 있다.

이외에도 우박·서리·스콜·화산재·지진해일 등 현상이 발생 또는 예상될 때 공항경보가 발령된다.

오임용 제주공항기상대장은 "기상청에서 다루지 않는 특보인 천둥·번개 경보, 급변풍 경보, 저시정 경보, 구름고도(운고) 경보 등은 공항에만 있는 특보"라며 "항공기상예·특보는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영향을 받는 공항 또는 공항반경 8km 이내 지역과 항로상의 공역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특정포인트 업무"라고 설명했다.

제주도는 섬, 한라산이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날씨 예측이 매우 어렵고, 이로 인한 항공기 결항·지연이 많이 발생한다.

항공기상에 위협을 주는 요소


[제주공항기상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신내림 받았나 하다가도 틀리면 쥐구멍에라도…"

"오늘 비행기 떠요? 안 떠요?"

"다른 비행기는 뜨는데 왜 우리 비행기는 안 떠요?"

제주공항기상대에서 일하다 보면 공항 이용객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자주 받곤 한다.

바람이 강하게 불거나 눈보라가 몰아치는 악기상(惡氣象)으로 인해 공항에 각종 기상특보가 발령될 때마다 공항에 발이 묶인 사람들이 항공사가 아닌 공항기상대 예보관들에게 하소연하는 것이다.

반대로 '어떻게 이런 날씨에 비행기가 뜨냐"며 항공기 운항을 멈춰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다.

정반대의 요구를 하는 민원 탓에 본 업무를 하기도 힘들 정도다.

임지영 예보관은 "정말 민원 전화가 많이 걸려 온다. 이때마다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날씨밖에 없어서 항공사에 문의해달라고 하면, 항공사에선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말이 되돌아온다"고 말했다.

임 예보관은 "해상에는 풍랑특보 등이 내려지면 선박 운항이 통제되곤 하는데 공항에는 각종 기상특보가 발령되더라도 비행을 금지하는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항공기 운항 여부는 각 항공사가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제주공항기상대


(제주= 변지철 기자 = 제주공항기상대 사무실 모습. 지난 3월 9일 촬영.

각 항공사가 날씨 예보와 항공기 규모와 조종사의 숙련도 등을 고려해 운항 여부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물론, 태풍 또는 폭설과 같은 위기 상황에선 국토교통부·공항공사·항공사 등이 협의해 전면 결항을 결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특별한 경우다.

예보관들은 평상시 마치 습관처럼 자신의 예보가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하곤 한다.

30시간 앞까지의 공항 기상상황을 365일 하루 네차례에 걸쳐 예보해야하는 업무의 특성상 언제나 고민에 빠지게 된다.

공항 반경 약 10㎞의 좁은 지역 날씨예보이기 때문에 비구름대의 이동속도와 각종 변수 등을 모두 고려해 시간 단위로 기온·풍향·풍속·일기현상·구름 등의 기상현상을 모두 맞추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예보관은 "몇시간 후는 바로 예측이 가능하지만, 예를 들어 30시간 후 내일 오후 2시에 비가 온다고 했는데 정말 그때 딱 맞춰 비가 오면, '아! 내가 신내림을 받았나' 스스로 감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천둥·번개를 동반한 뇌우 구름이 한라산을 넘어 제주공항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는데, 틀리면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든다"고 말했다.

제주공항 모습


[ 자료사진]

모든 항공 기상정보 하나하나가 항공기 운항 여부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가령 항공기상 예보를 실제보다 강하게 내릴 경우 그 예보를 믿고 공항에 결항 결정이 내려지면 즉각 비행기 승객의 불편, 항공사 손실 등 제주 관광 산업 등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데이터에 기반한 정확한 예측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탓에 예보관들은 자신의 예보가 맞는지 틀렸는지 궁금해 야근할 때든 퇴근 후에든 자꾸 날씨 상황을 체크하곤 한다.

현재 제주공항의 기상 예보 정확도를 점수로 환산하면 90점 정도다.

제주공항기상대에서 발표한 시간 단위의 풍향·시정·일기현상 등 예보가 실제 날씨와 비교해 평가한 결과 90%의 정확도를 보였다는 뜻이다.

비교적 높은 정확도다.

하지만 일기예보를 맞췄을 때보다 틀렸을 때 그 결점이 도드라지고 사람들의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예보의 정확도와 일반인의 체감도 사이에 괴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오임용 제주공항기상대장은 "예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측이다. 옛날에는 신의 영역이라고 했다. 오늘날에는 장비, 기술의 발달로 예보의 정확도가 많이 개선됐지만, 높아진 국민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좀 부족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보관들이 24시간 밤낮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을 국민들도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제주공항기상대 직원들


(제주= 변지철 기자 = 지난 9일 오후 와 인터뷰한 제주공항기상대 직원들의 모습. 왼쪽부터 박세진 주무관, 정희원 주무관, 오임용 제주공항기상대장, 임지영 주무관, 임슬범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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