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시내 모습 [로이터 자료사진]
서혜림 기자 = 한때 유럽 최빈국이던 아일랜드가 '돈방석'에 앉았다.
낮은 법인세율을 내세워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한 데 따른 세수 증가에 힘입어 유례없는 재정 흑자를 누리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해 아일랜드의 예상 법인세 수입은 375억 유로(약 55조원)에 달한다. 이는 아일랜드가 10년 전 거둬들인 법인세 수입(46억 유로·약 7조 원)의 약 8배에 달하는 규모다.
전체 법인세 수입을 전체 인구로 나누면 국민 1인당 약 7천 유로(약 1천25만원)를 받는 셈으로, 이웃 나라인 영국(1천248유로·약 183만 원)의 약 5.6배 수준이다.
이같은 막대한 법인세 수입의 주요인으로는 아일랜드의 낮은 법인세율이 꼽힌다.
아일랜드의 법인세율은 15%로 미국보다 6%포인트가 낮다.
여기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지난 10년간 거대 글로벌 기업들의 역외 조세 회피를 강력히 단속한 것도 주효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각국 당국의 철저한 감시로 이들 기업이 케이먼 제도와 같은 조세회피처를 이용해 법인세를 회피할 수 없게 되자 비교적 세율이 낮은 아일랜드로 눈을 돌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애플, 구글 모회사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화이자 등 유수 글로벌 기업들이 아일랜드에 둥지를 틀었다.
이들 기업이 내는 법인세에 힘입어 넉넉한 재정을 확보하게 된 아일랜드 정부는 각종 인프라 구축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특히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는 약 22억 유로(약 3조2천억원)를 투입하는 어린이 병원이 건설되고 있다. WSJ은 이 병원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어린이 병원이 될 것 같다"고 짚었다.
이 밖에 주택과 풍력발전소, 홍수 방지 시설 건설 등에도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더블린에 세워진 공공주택 모습
[AF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더블린의 한 시민은 "좋은 시절이 돌아왔다"며 "쏟아붓는 돈이 엄청나다"고 말했다.
이같은 아일랜드의 활황은 과거에 겪은 이 나라의 경제적 고비들과는 대비되는 것이다.
아일랜드는 1840년대 발생한 '감자 대기근'으로 국민 대부분인 400만 명 이상이 이민 길에 오르는 고초를 겪었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에는 국가 부도 위기에까지 내몰린 바 있다.
WSJ은 "한때 대량 이주로 유명했고, 금융 위기로 거의 파산할 뻔한 나라가 이제 급증하는 수요 속에서 주택부터 풍력발전소까지 모든 것을 건설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들여오고 있다"며 "이는 한 세대 전에는 거의 상상할 수 없었던 '행운'과 같은 변화"라고 짚었다.
다만 일각에선 적극적인 지출 확대가 경기 과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시머스 코피 아일랜드 재정자문위원회 의장은 최근 정부 지출의 급증은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2기 행정부 출범 역시 변수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기업의 법인세율을 15%로 인하하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이다.
세무 전문가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확실치는 않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기업들의 미국 '귀환'을 유도한다면 아일랜드에는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아일랜드 외국인직접투자청(IDA)을 이끄는 피어갈 오루크는 과거 미국의 법인세 정책이 바뀌는 데에 30년이 넘게 걸렸고, 그사이에 별다른 일이 없었다며 "미국에서 조만간 그런 일이 일어나겠는가"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