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박동주 기자 = 우원식 국회의장이 1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고 있다. 2024.12.14
신호경 한지훈 민선희 기자 =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과거 두 차례 탄핵 때는 민간 소비·주가 등이 단기적으로 타격을 입었다가 대체로 반년 안에 안정을 되찾은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과거엔 중국이나 반도체 특수가 경제를 떠받치던 시기로, 경제 환경이 전반적으로 우호적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민간 소비 등 내수뿐 아니라 수출까지 둔화하는 '복합 위기' 상황이라서 어려움이 오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2016년 소비 증가율 반토막, 반도체 호황에 설비투자가 상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2016년 12월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이듬해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인용 판결을 받았다.
15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코스) 등에 따르면 당시 탄핵 가결로 가장 크게 위축된 경제 부문은 민간 소비였다.
2016년 2분기와 3분기 각 3.4%, 3.3%에 이르던 전년동기대비 민간 소비 증가율은 탄핵이 가결된 4분기에 절반 이하인 1.6%로 추락했다. 전 분기 대비 증가율 역시 2분기 0.8%, 3분기 0.4%를 거쳐 4분기 0.2%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한국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 분기 대비)은 4분기 0.8%로 3분기(0.4%)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전년 동기와 비교한 4분기 성장률도 3분기와 같은 2.8%를 유지했다.
민간 소비 급감에도 한국 경제가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데는 설비투자 호조 덕이 컸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3분기에 전 분기·전년동기대비 각 2.9%, 2.2%에서 4분기 5.6%, 11%로 뛰었다. 2017년 1분기 전년동기대비 설비투자 성장률은 20.6%까지 치솟았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2016∼2017년 당시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의 초기였기 때문에 민간 소비 증가율이 4분기에 큰 폭으로 떨어졌어도 설비투자가 10%, 20%가 넘는 증가율로 전체 경제 성장률 하락을 막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2016년 4분기 탄핵 국회 의결과 2017년 1분기 헌법재판소 탄핵 인용 전후 경제 성장률(전 분기 대비)은 ▲ 2016년 2분기 1.3% ▲ 3분기 0.4% ▲ 4분기 0.8% ▲ 2017년 1분기 1.1% ▲ 2분기 0.7% ▲ 3분기 1.4% 등으로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실물경제 지표 추이(단위:%)
[한국은행 ECOS 통계.재판매 및 DB 금지]
◇ 2016년 환율상승·주가하락, 탄핵 가결 후 약 3개월내 회복
박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원/달러 환율은 정치 이슈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2016년 9월 1.10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국정 농단 관련 정국 혼란과 함께 10월 말 1,144.5원, 11월 말 1.169.1원까지 오르더니 결국 탄핵 가결 이후 12월 말 1.207.7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듬해 1월 3일 고점(1,211.8원)을 찍고 내려서 3월 10일 탄핵 인용 당일에는 1.157.4원까지 떨어졌다.
종합주가지수(코스피) 역시 9월 말 2,043.63에서 10월 말 2,008.19를 거쳐 11월 1,983.48까지 하락하면서 단기적으로 타격을 받았지만, 탄핵 가결을 기점으로 다시 오르기 시작해 ▲ 12월 말 2,026.46 ▲ 2017년 1월 말 2.067.57 ▲ 2월 말 2,091.64 ▲ 3월 말 2,160.23 ▲ 4월 말 2,205.44 ▲ 5월 말 2,347.38 등으로 치솟았다.
한국거래소 집계(장내 거래 기준) 외국인 투자도 2016년 11월만 순매도(-3천295억원)를 기록했을 뿐, 2016년 6월부터 1년 뒤 2017년 6월까지 줄곧 순매수 기조를 유지했다. 정치 이슈보다 글로벌 반도체 경기 호조 등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게 한은 등의 분석이다.
한은 국제수지 기준(장 내외 거래 모두 포함) 외국인 증권(주식·채권) 투자도 2016년 9월(-18억1천만달러)·10월(-32억3천만달러)·11월(-27억3천만달러) 3개월 연속 순매도에서 12월 3천만달러 순매수로 돌아선 뒤 계속 순매수 규모가 커져 2017년 3월에는 70억2천만달러에 이르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환율·코스피·외국인투자 추이
[한국은행 ECOS 통계.재판매 및 DB 금지]
◇ 2004년 중국 특수로 수출 28% 증가가 충격 흡수
2004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의 경제 파장은 상대적으로 더 작았다.
결과적으로 탄핵이 무산된 데다가 3월 12일 국회의 탄핵 의결부터 5월 14일 헌법재판소의 기각까지 기간이 짧았기 때문이다.
당시 민간 소비의 전 분기 대비 증가율은 2003년 4분기 0.1%에서 2004년 1분기 -0.1%로 낮아졌다. 하지만 2분기(0.3%) 곧바로 반등해 같은 해 4분기 1.1%까지 올랐다.
경제 성장률도 전기 대비로는 2003년 4분기 2.5%에서 2004년 1분기 1.4%로 낮아졌지만, 전년 동기 대비로는 오히려 같은 기간 3.7%에서 5.7%로 높아졌다.
이때 정치적 충격을 흡수한 것은 중국 특수에 따른 수출 호조였다.
전 분기·전년동기대비 수출 증가율은 2004년 1분기 탄핵 가결 시점에도 각 6.5%, 28%에 이르렀고, 이후에도 크게 꺾이지 않았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들어와 2004년 세계 공장으로서 한창 활기를 띠던 시기"이라며 "우리나라 수출도 그 수혜를 입던 때라 탄핵의 경제 타격이 크게 없었다"고 진단했다.
박정우 노무라 이코노미스트도 "당시 강력한 중국 수요로 통관 기준 수출이 탄핵 사태 기간에도 전년동기비 30%대의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탄핵 충격을 완화했다"고 분석했다.
원/달러 환율은 2004년 3월 12일 탄핵 가결 시점에 1,180.8원으로 2월 말(1.176.2원)보다 소폭 올랐지만, 3월 말에는 1,146.6원까지 내렸다. 5월 14일 헌법재판소 기각 때도 1.187.0원까지 다소 높아졌다가 5월 말 곧 1,160원대로 안정됐다.
코스피의 경우 2월 말 883.42에서 가결 당시 848.80으로 떨어졌지만, 3월 말에는 880.50까지 다시 반등했다. 거래소 집계 외국인 주식 투자도 3월 전후 1년간 꾸준히 순매수 기조를 유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실물경제 지표 추이(단위:%)
[한국은행 ECOS 통계.재판매 및 DB 금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환율·코스피·외국인투자 추이
[한국은행 ECOS 통계.재판매 및 DB 금지]
◇ 너무 다른 2024년, 수출·내수 동반 부진에 정치 혼란까지
한은과 정부는 이런 과거 탄핵 사태 당시 경제 지표 흐름을 근거로, 이번 비상계엄 이후 정국 혼란 역시 경제에 큰 타격을 주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앞서 5일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자 간담회에서 "(계엄·탄핵 정국이) 단기적으로 끝날지 길게 갈지 불확실성이 있다"면서도 "과거 경험으로 미뤄 길게 가더라도 정치적 프로세스와 경제적 프로세스가 분리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데이터를 보면 중장기 영향이 크게 없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당수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 경제의 처지가 과거 두 차례 탄핵 사태 당시와 크게 다르다고 주장한다.
2004년 중국이나 2016년 반도체와 같은 '비빌 언덕'이 없는 데다, 민간 소비 등 내수 회복은 미미한데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등과 함께 수출 증가세까지 꺾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은 수출 경기가 둔화하는 국면에서 내수 역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험에 따른 건설경기 부진, 고령화와 가계부채에 따른 소비둔화 등의 구조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며 "경제 전반에 미칠 탄핵 충격을 흡수할 마땅한 완화 장치가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성장률(전기 대비)은 2분기 역성장(-0.2%)에 이어 3분기 0.1%에 그쳤고, 특히 수출이 0.4%나 뒷걸음쳤다. 한은은 이런 경기 부진과 '트럼프 2기' 정책 위험 등을 반영해 내년과 내후년 성장률 전망치를 1.9%. 1.8%까지 낮춰잡았다.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4일부터 13일까지 외국인 투자자는 유가증권거래소에서 무려 1조3천490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코스피는 3일 2,500.10에서 9일 장중 2,360.18까지 추락했다가 13일 2,494.46으로 회복한 상태다.
원/달러 환율은 계엄 선포 직후 1.440원대까지 치솟았고 여전히 1,430원대 안팎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치권은 탄핵 정국을 되도록 빨리 수습해 경제 정책의 공백을 최대한 줄이고 정부와 한은이 적극적으로 경기 부양에 나서지 않을 경우, 이런 한국 시장 탈출과 경기 추락 흐름을 막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전후 환율 추이
[연합인포맥스 통계.재판매 및 DB 금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전후 코스피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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