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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재의 새록새록] "용기를 내" 용맹함이 더 필요한 흰꼬리수리
기사 작성일 : 2023-03-09 07:01:18
까마귀들의 공격 받는 흰꼬리수리 유조


[촬영 유형재]

(강릉= 유형재 기자 = 초미세먼지가 유난히 심하던 3월의 어느 주말 오후.

겨울철새의 월동지 가운데 한 곳인 강원 강릉시 남대천 상공에 맹금류 어린 흰꼬리수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먹이활동을 하거나 따뜻한 봄볕을 즐기며 졸고 있던 청둥오리와 쇠오리 떼가 흰꼬리수리(천연기념물·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의 출현에 화들짝 놀라 일제히 날아올라 자리를 서둘러 피한다.

국내를 찾는 조류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큰 맹금류 중의 하나인 흰꼬리수리가 뜨면 일반적으로 이런 비상 상황이 연출된다.

흰꼬리수리는 조금 전 갈매기가 커다란 물고기를 잡아 모래톱으로 끌어 올린 뒤 먹기 시작하는 것을 멀리 떨어진 산의 높은 소나무에 앉아서 보고 있다가 이를 빼앗기 위해 한달음에 날아 온 것이다.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흰꼬리수리 유조


[촬영 유형재]

때마침 흔히 조류계의 조폭으로 불리는 갈매기와 까마귀, 까치 등이 갈매기가 잡은 죽은 물고기를 놓고 다툼과 신경전을 벌이며 막 먹기 시작하던 중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흰꼬리수리가 손쉽게 물고기를 가지고 갈 것으로 생각했다.

덩치가 상대적으로 매우 큰데다 무시무시한 날카로운 발톱을 가져 아무리 텃세를 부리는 지역 조폭(?)이 설치더라도 먹이활동에 큰 지장을 갖지는 않을 듯했다.

이번 겨울 이곳의 터줏대감이었던 성조와 아성조가 짝을 이룬 흰꼬리수리 부부는 그동안 이들 조폭의 텃세에도 불구하고 물고기를 사냥하는 노련한 맹금류다운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죽은 물고기 놓고 다툼 벌이는 까마귀와 갈매기


[촬영 유형재]

그러나 상황은 묘하게 흘러갔다.

이날 나타난 흰꼬리수리는 트레이드 마크인 꼬리가 아직 하얗게 변하지 않았고, 부리도 노랑이 아닌 검정이며 몸 전체의 색깔도 짙은 고동색에 가까웠다.

한마디로 아직 한참 더 커야 하는 어린 유조였다.

유조는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발을 내리고 날개를 넓게 펼치며 먹이를 향해 호기롭게 내려앉는 듯했으나 까마귀와 갈매기가 달려들자 황급히 날아올라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다.

그날 먹이를 먹지 못한 탓인지 물고기가 있던 주변 상공을 계속 선회하며 물고기를 낚아챌 기회를 엿보는 듯했다.

흰꼬리수리 유조 공격하는 까마귀


[촬영 유형재]

흰꼬리수리 유조 공격하는 까마귀


[촬영 유형재]

그러다 다시 접근했으나 득달같이 달려드는 까마귀를 피해 다시 달아났고, 또다시 날아와 기회를 엿봤으나 이번에는 갈매기에 쫓기듯 하늘 높이 날아올라야 했다.

배고픈 유조는 남대천 중·하류를 오르내리며 다른 먹이를 한참 찾았으나 끝내 먹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또다시 와서 접근을 시도했으나 까마귀 등의 등쌀에 실패했다.

그렇게 2시간 동안 먹이가 있던 주변 상공을 뱅뱅 돌며 기회를 엿보던 유조는 맹금류다운 위엄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물고기를 남겨둔 채 인근의 쉼터로 날아갔다.

안타깝게도 이날 물고기는 갈매기와 까마귀, 까치가 다 뜯어 먹었고 유조의 차례까지 오지는 않았다.

이 유조는 강릉보다 더 남쪽에서 겨울을 보내고 귀향하는 중에 남대천에 들른 것으로 추정된다.

까마귀에 쫓기는 흰꼬리수리 유조


[촬영 유형재]

갈매기에 쫓기는 흰꼬리수리 유조


[촬영 유형재]

남대천에서 겨울을 보낸 부부로 추정되던 흰꼬리수리 2마리는 유조가 남대천에 나타난 지난 2월 말께 귀향을 위해 먼저 이곳을 떠났다.

유조는 한때 이들과 함께 지내며 활발한 먹이활동을 하기도 했으나 이들이 떠난 뒤 혼자 남아 외로이 남대천을 오르내리며 힘든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유조는 이곳에서 활발한 먹이 활동하며 기력을 충분히 충전한 뒤 다시 북쪽으로 아주 먼 길을 떠나야 한다.

어린 흰꼬리수리가 험한 세상에서 살아 내려면 갈매기와 까마귀의 등쌀에도 최상위 포식자의 위엄을 보여주고 의연히 대처할 수 있는 용맹함과 용기가 더 필요해 보였다.

내년에는 용맹함을 더 갖추고 나타나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도 맹금류다운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흰꼬리수리 유조(왼쪽)와 성조(오른쪽)의 차이


[촬영 유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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