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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존슨 내각, BBC에 '코로나 보도' 외압…"野 비판하라" 요청도
기사 작성일 : 2023-03-15 13:00:58
2022년 5월 당시 런던 다우닝가 집무실을 나서는 보리스 존슨 총리 모습


[A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김동호 기자 =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가 재임할 당시 BBC 방송에 보도 방향과 관련해 각종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디언은 2020∼2022년 BBC 사내에서 오간 메신저·이메일 대화를 확보했다며 "다우닝가(총리관저)의 압력으로 BBC 직원들 사이 '회사가 정부에 너무 겁을 먹었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초기이자 영국 정부가 이동제한령을 발표한 당일인 2020년 3월 23일 한 BBC 고위 편집자는 기자들에게 "중요 권고, 언어 재공지"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 편집자는 "다우닝가가 '봉쇄'(lockdown)라는 단어를 피할 수 있는지 물어왔다"며 "그들(정부)은 사람들이 집에 머무르도록 압박하고자 하지만, 현 상황에서 이를 강제하지는 않는다는 메시지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 당부를 접한 기자들은 이견을 표했지만, 결국 이날 BBC 방송과 홈페이지 기사에는 '억제'(curb), '제한'(restriction)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하지만 경쟁사인 스카이뉴스는 '봉쇄' 단어를 그대로 사용했고, 일간 데일리메일은 다음날 1면에 "영국 봉쇄"라고 큼지막한 헤드라인을 달았다.

2021년 10월 24일에 기자들에게 하달된 메신저 대화는 또다른 고위 편집자가 야당인 노동당과 관련해 비판적인 논조로 보도해줄 것을 주문하는 내용이다. 존슨 전 총리부터 현 리시 수낵 총리까지 보수당 정권이 집권 중이다.

그는 이 메시지에서 "다우닝가는 노동당의 난잡한 '플랜B'에 대한 내용을 BBC가 온라인 보도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불평한다"며 "금주 초 애쉬워스가 이를 언급했다 번복한 데 대한 회의론의 수위를 높여볼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영국 봉쇄' 헤드라인으로 전한 데일리메일


[트위터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당시 노동당의 존 애쉬워스 노동부문 대변인이 코로나19 방역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가 이를 주워담는 등 오락가락한 상황을 콕 집어 비판해달라는 취지다.

이번에도 실제로 BBC는 노동당이 코로나19 대응책과 관련해 입장을 수시로 바꿨다는 지적을 온라인 보도에 끼워넣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19일에는 당시 존슨 총리가 연설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항전하는 상황을 자신이 추진하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에 빗댔다 논란이 된 일이 있는데, 이튿날 이와 관련해서도 총리실의 '지침'이 내려왔다.

BBC의 한 편집자는 총리실 공보담당이 전해온 메시지를 그대로 정치부 기자들에게 공유했는데, 여기에는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한 직원이 트위터에 "대사는 총리가 브렉시트를 우크라이나와 동일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며 "총리의 연설을 곡해하는 기자들에게 공유할만한 것 같다"고 쓴 내용이 포함돼있었다는 것이다.

한 직원은 이 메시지를 두고 "해당 사안에 대한 BBC 보도 방향에 오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밖에도 직접적인 압박은 아니지만, 한 편집자가 존슨 총리의 불륜 추문과 관련한 보도가 줄어든 것을 두고 기자들에게 "정말 잘 했다"고 말하는 등 총리실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여러 언급이 수시로 내려왔다고 한다.

다른 직원은 "특히 홈페이지 기사와 관련, 주기적으로 다우닝가의 전화에 따라 헤드라인이 바뀌곤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런 종류의 지침은 대다수의 경우 구두로 전달돼 기록에 남지 않았다고 복수의 직원이 증언했다.

고개 숙인 스포츠 진행자 리네커


[로이터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한 소식통은 BBC 경영진이 총리실의 뜻을 거슬렀다가 정치인들 및 총리실에 대한 접근이 제약될 것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BBC 측은 이같은 의혹에 대해 "다른 매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다양한 정당의 대표자들로부터 자주 연락을 받는다"며 "선택적인 메신저 대화만 놓고서는 편집방향에 대한 BBC의 의사결정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지난 7일 BBC의 스포츠 프로그램 스타 진행자 게리 리네커가 정부의 난민 정책을 '1930년대 나치의 언어'에 비유하며 비판한 일과 관련해 BBC가 정부의 비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고 가디언은 평가했다.

리네커의 발언으로 보수당 정치인들 사이에서 비난이 폭발했고, 이에 10일 BBC는 리네커에 대해 출연정지 결정을 내렸다가 역풍이 일자 사흘만인 13일 이를 번복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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