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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태광 이호진, 계열사 김치·와인 강매에 관여"
기사 작성일 : 2023-03-16 12:00:17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 자료사진]

정성조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총수 일가 소유 회사의 김치와 와인을 계열사들에 강매한 태광그룹을 제재한 건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6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흥국생명 등 태광 계열사 19곳이 공정위를 상대로 "시정명령 등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이 전 회장 측 패소 취지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공정위는 2019년 태광 계열사들이 총수 일가가 100% 보유한 업체 '티시스'에서 생산한 김치를 고가에 사들이고, 역시 총수 일가가 소유한 '메르뱅'에서 합리적 기준 없이 와인을 매입한 사실을 적발했다.

태광 계열사들은 2014∼2016년 김치 512t을 시가보다 비싼 95억5천만원에 산 것으로 조사됐다. 계열사들은 비슷한 시기 이 전 회장의 부인과 딸이 소유한 메르뱅에서 와인 46억원어치를 사들이는 등 '일감 몰아주기'도 했다.

공정위는 태광 19개 계열사가 이런 식으로 총수 일가에 만들어 준 이익이 33억원을 웃돈다고 보고 이 전 회장과 그룹 경영기획실장 김모씨, 계열사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 전 회장에게는 시정명령을, 계열사들에는 시정명령과 과징금 21억8천만원도 부과했다.

이 전 회장과 계열사들은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원심(서울고법)은 계열사들에 대한 시정명령·과징금은 정당하지만, 이 전 회장에게 내려진 시정명령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 전 회장이 김치·와인 거래에 관여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대법원은 이 전 회장에게도 제재가 내려져야 한다며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공정거래법 23조의2는 '기업집단 계열사는 특수관계인(기업집단 동일인과 친족)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 행위 등을 하면 안 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태광 계열사들의 김치·와인 매입이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이며 "이 전 회장이 이 거래에 관여했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김치 거래가 특수관계인에 대한 변칙적 부의 이전, 태광에 대한 지배력 강화, 아들로의 경영권 승계에 기여했다"며 "태광의 의사결정 과정에 지배적 역할을 하는 이 전 회장은 티시스의 이익·수익 구조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 영향력을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이 전 회장이 평소 특수관계인 지분이 높은 회사에 대한 계열사의 이익 제공 행위를 장려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면 임직원들이 이 전 회장 일가 소유회사가 요구하는 사항을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업집단의 대주주들은 지배주주 지위를 남용해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로 하여금 특수관계인에게 이익을 제공하게 함으로써 부당이익을 얻고,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등의 행위를 계속해 비판이 제기돼왔다"며 "이 판결은 이익 제공 행위에 관한 특수관계인의 평소 태도 등 간접 사실에 의한 증명을 폭넓게 허용한 것"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앞서 이 전 회장을 무혐의 처분한 검찰이 재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정위 고발로 태광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2021년 이 전 회장을 불기소하고 경영기획실장만 재판에 넘겼다. 이 전 회장이 재무 상황을 보고받거나 범행을 지시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게 근거였다. 계열사들에 대해선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이 내려진 점을 감안해 기소유예나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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