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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이해인, 좌절·고통·눈물 딛고 우뚝…'새 역사 썼다'
기사 작성일 : 2023-03-24 23:00:48
은메달 목에 건 이해인


피겨스케이팅 이해인이 24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한국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건 2013년 김연아 이후 10년 만이다. [로이터=]

김경윤 기자 = '꿈의 무대'인 올림픽 출전의 기회를 눈앞에서 놓친 선수들은 극심한 좌절감과 고통을 느끼기 마련이다.

도전의 기회도 잡지 못한 선수들은 환희와 기쁨에 가득 찬 경쟁자들의 모습을 TV로 바라보며 많은 눈물을 흘리곤 한다.

무기력함에 사로잡힌 몇몇 이들은 슬럼프를 겪기도 하고 심하면 선수 인생에 마침표를 찍기도 한다.

올림픽 출전 좌절의 아픔은 참 고통스럽다.

2022년 10월 ISU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한 이해인


[EPA=]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이해인(17·세화여고)은 지난해 올림픽 출전 실패의 고통을 겪었다.

그는 2021년 12월에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선수 선발 1차 대회에서 극심한 컨디션 난조를 이겨내지 못하고 6위에 그쳤고, 지난해 1월에 열린 2차 대회에선 큰 점수 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상위 2명에게 주는 올림픽 티켓을 놓쳤다.

이해인은 2021 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0위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한국의 올림픽 쿼터를 2장으로 늘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에 더욱 뼈아팠다.

그는 자기 손으로 만든 올림픽 쿼터를 눈앞에서 잃었고, 베이징 무대는 유영과 김예림(단국대)의 몫이 됐다.

사실 이해인의 탈락을 예상한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이해인은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기록을 쏟아내며 한국 여자 싱글의 차세대 간판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만 13세이던 2018년 10월 한국 선수 역대 최연소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메달 획득에 성공했고, 2019년엔 김연아 이후 처음으로 ISU 주니어 그랑프리 2개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경기 결과는 이해인의 꿈을 무참하게 무너뜨렸다.

훈련하는 이해인


[ 자료사진]

올림픽 출전의 꿈이 사라졌지만, 이해인은 은반을 떠나지 않았다.

이해인은 국내에서 조용히 훈련에 전념했다.

그는 독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베이징올림픽 개막 직전에 열린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 출전해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이해인은 개인 최고점을 10점 이상 끌어올리며 총점 점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마친 이해인은 함성을 지른 뒤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가 얼마나 심하게 속앓이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의 연기는 베이징 올림픽에 묻혀 큰 화제를 모으지 못했지만, 이해인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프리스케이팅의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자신을 치유했다.

2022년 세계선수권대회 후 눈물 흘리는 이해인


[EPA=]

이해인은 쉼 없이 전진했다. 그는 지난해 3월에 열린 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점을 받아 최종 7위에 올랐다.

2021년 10위에 이은 2년 연속 '톱10'의 성과였다.

한국 선수가 2년 연속 세계선수권대회 톱10에 진입한 건 김연아 은퇴 이후 처음이었다.

세계선수권대회는 당초 김예림이 출전할 예정이었지만, 출국 직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이해인이 대신 출전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상처는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흉터엔 새살이 돋아났고, 이해인은 마침내 웃기 시작했다.

이해인의 점프


(의정부= 홍해인 기자 = 이해인이 9일 오후 의정부 실내빙상장에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해 열린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22' 대회에서 시니어 여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 연기를 펼치며 점프 뒤 착지하고 있다. 5회 다중촬영.

고통스러운 2021-2022시즌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이해인은 새 시즌을 향해 도약했다.

그의 연기는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했다.

이해인은 지난 달 열린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마침내 최정상의 자리에 섰다.

쇼트프로그램에선 6위에 그쳤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완벽한 모습을 펼치며 점으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이해인이 선수 인생에서 ISU 주관 메이저 시니어 대회 정상을 차지한 건 처음이었다. 아울러 2009년 김연아 이후 한국 여자 싱글 선수로는 처음으로 4대륙선수권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기뻐하는 이해인


피겨스케이팅 이해인이 24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연기를 마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로이터=]

이해인은 김연아 은퇴 이후 한국 선수로는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세계선수권대회 문턱까지 뛰어넘었다.

이해인은 24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2023 ISU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

쇼트프로그램에 이어 프리스케이팅에서도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연기로 개인 최고점인 점을 받으며 은메달을 차지했다.

연기를 마친 뒤에도, 메달 획득이 확정된 뒤에도 이해인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세계선수권 대회 은메달 목에 건 이해인(왼쪽)


피겨스케이팅 이해인이 24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딴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가운데는 금메달리스트 일본 사카모토 가오리. 오른쪽은 동메달리스트인 벨기에의 루나 헨드릭스. [로이터=]

대신 그 어느 때보다 맑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해인의 마음속에 봄꽃이 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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