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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흔적 줄사택]① 철거될 뻔한 전범기업 노무자 숙소
기사 작성일 : 2023-03-25 08:00:32

[※ 편집자주 = 일제의 조선인 강제동원 흔적을 간직한 인천 '미쓰비시 줄사택'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재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하는 가운데 줄사택은 한·일 양국 사이의 아픈 역사를 생생히 보여주는 현장이라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는 줄사택의 역사와 과거 진행됐던 보존·철거를 둘러싼 논란, 현재 모습과 전문가 의견 등을 조명하는 2편의 기사를 송고합니다.]

미쓰비시 줄사택


[촬영 김상연]

(인천= 홍현기 기자 = 인천 도심에 있는 미쓰비시(三菱) 줄사택은 일제강점기 군수물자 공장 '미쓰비시제강 인천제작소' 노무자들의 합숙소로 쓰였던 곳이다.

줄사택은 전범 기업 미쓰비시제강이 강제 동원한 조선인들의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국내 유일한 장소로 평가받는다.

인천시 부평구는 이런 점을 고려해 당초의 철거 계획을 철회했고, 줄사택을 국가등록문화재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 전범 기업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

부평에 미쓰비시 줄사택이 건립된 시기는 일제의 한반도 병참기지화가 본격화한 1939년으로 추정된다.

줄사택은 미쓰비시제강 인천제작소의 전신인 히로나카상공(弘中商工) 부평공장 노무자들의 숙소로 건립됐다.

3년 뒤 미쓰비시제강이 히로나카상공을 인수하면서 사택 소유권도 함께 넘겨받았다. 이후 작은집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고 해서 줄사택으로 불렸다.

줄사택 거주자 상당수는 인천제작소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무자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2만1천㎡ 규모 인천제작소에서 군사용 특수강판이나 포탄 등을 만드는 공정에 투입됐다.

부평역사박물관 학술총서 '미쓰비시를 품은 여백, 사택마을 부평삼릉'을 보면 이곳에서 일한 조선인은 견습생·잡부·목공 등 역할을 맡았고, 일본인과 달리 사원 직급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양한 기계가 가동되는 공장에서는 노무자들이 사고를 당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이곳에 동원된 조선인 수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히로나카상공 부평공장 시절 직공 수가 1천88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조선인 수백명이 강제 노동에 시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철거 예정 문구 쓰여진 줄사택


[ 자료사진]

◇ 철거 위기 놓였던 줄사택 보존 결정…"협치 사례"

미쓰비시 줄사택은 1950년대까지 16개 동 가량이 남아 있다가 개발 사업 등으로 상당수가 철거되고 2018년 말에 9개 동만 남았다.

부평구는 줄사택 일부를 보존해 박물관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인근 주민들이 "낙후된 지역 이미지를 굳히려고 한다"며 반발해 박물관 조성 계획을 철회했다.

구는 주민공동이용시설과 행정복지센터를 짓겠다며 2018∼2019년 2차례에 걸쳐 줄사택 9개 동 가운데 3개 동을 철거했다.

구는 당시 나머지 6개 동 중 4개 동도 매입해 추가로 철거한 뒤 주차장을 조성하려 하는 등 거의 모든 줄사택이 철거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천고 학생 519명이 철거 반대 서명을 부평구에 전달하고 시민단체와 학계도 잇따라 보존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문화재청도 2020년 10월 인천시와 부평구에 미쓰비시 줄사택 보존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고 보존을 권고하면서 철거 계획에는 제동이 걸렸다.

문화재청은 줄사택이 강제 동원 노동자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근대 문화유산이라고 평가하며 "시대적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보존·활용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부평구는 2021년 7월 전문가·주민·구의원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회를 구성하고 줄사택 보존 여부를 논의했다.

협의회는 1년 넘게 논의를 이어간 끝에 지난해 11월 현재 남아 있는 줄사택 6개 동을 최대한 보존해달라는 정책 권고안을 부평구에 전달했고, 구는 체계적인 보존·활용 계획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연경 인천대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줄사택은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학계·공무원·시민 등이 함께 하는 협치가 이뤄진 좋은 사례"라며 "오랜 기간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기억을 남긴다는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미쓰비시 줄사택의 옛 모습


[인천시 부평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국가등록문화재 등재 추진…역사문화 공간으로 활용 계획

부평구는 현존하는 미쓰비시 줄사택 6개 동 가운데 이미 매입한 4개 동의 국가등록문화재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구는 줄사택을 문화재로 올린 뒤 역사·문화 탐방 시설이나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구는 오는 5월 줄사택 활용계획·도면·문헌자료 등을 담은 국가등록문화재 신청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할 계획이다. 등록문화재가 되면 유지·보수 비용 50%를 국비로 지원받게 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자체의 신청이 들어오면 현장 조사를 거쳐 문화재위원회에 상정해 등록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등록문화재 952개 가운데 일제강점기 시설물은 많지만, 강제동원 유적은 많지 않다. 남제주비행기 격납고와 제주 송학산 해안 일제동굴진지 정도가 관련 유적으로 꼽힌다.

건축 분야 전문가들은 일제의 한반도 병참기지화 시기 건설된 노무자 주택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쓰비시 줄사택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부평구 관계자는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제강에 강제 동원된 노동자들의 숙소로는 줄사택이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다"며 "앞으로 논의를 거쳐 구체적 활용 계획을 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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