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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주역…윤식 전 의원 별세
기사 작성일 : 2023-03-25 12:00:28


[유족 제공]

이충원 기자 =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一翼)임을 자랑한다…(중략)…나가자! 자유의 비밀은 용기일 뿐이다'

명문으로 꼽히는 '서울대 문리대 학생일동' 명의의 4·19 선언문은 원래 다른 사람이 썼지만,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회장인 윤식(尹埴)이 경북고·서울대 정치학과 동기생인 이수정(1940∼2000) 전 문화부 장관에게 시켜서 다시 쓰게 한 것이었다.

4·19 혁명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윤식 전 의원이 24일 오후 9시30분께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대장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25일 전했다. 향년 83세(만).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0년 당시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회장으로 3·15 부정선거 직후 서울 시내 각 대학과의 연합 시위를 기획했다. 처음엔 4월21일 시위를 하려고 했다가 4월18일 고려대 학생들이 먼저 행동에 나서자 4월19일 아침으로 거사를 앞당기기로 하고 그날밤 늦게 대구에서 올라온 이수정씨에게 선언문을 쓰게 했다.

4·19 혁명 후인 1960년 11월 서울대 민족통일연맹을 결성하고 '남북한 서신교환' 등을 주장했다가 1961년 징역 10년형이 확정됐고, 1962년 형 면제로 출소했다.

이후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하와이대를 거쳐 미국 사우스베일러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국민대 경제학과 전임강사·조교수, 중동문제연구소·국제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으로 학계에 몸을 담았다. 1972년 11월 4·19 세대 45명의 일원으로 10월 유신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1979년 유신정우회 소속으로 제10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잠시 정계에 몸을 담았지만 1981년부터 다시 국제경제연구원과 그 후신인 산업연구원 등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했고, 1999년 한경제사회연구원 원장, 2001년 대구경북개발연구원장, 2003년 전국시도연구원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에 '진보·정의·자유를 위한 노우트'(2003) 등이 있다.

유족으론 부인 원숙희씨와 사이에 1남1녀(윤정주·윤지은)와 며느리 정선아씨 등이 있다. 빈소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27일 오전 7시30분, 장지는 용인공원묘원. ☎ 02-2019-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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