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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 분쟁 당시 대한약사회장…정종엽씨 별세
기사 작성일 : 2023-03-25 13:00:29


[유족 제공]

이충원 기자 = 1990년대 중반 한약 분쟁 당시 약사 측 흐름을 이끈 정종엽(鄭鍾燁) 전 대한약사회장이 23일 오후 11시30분 부산 자택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25일 전했다. 향년 86세(만).

경남 함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8년 성균관대 약대를 졸업한 뒤 부산 수정동에서 '시민약국'을 운영했다. 1974년 부산시약사회장, 1992년 대한약사회 부회장을 거쳐 1994년 1월 임시총회에서 제29대 회장에 당선됐다.

당시는 '약사의 한약 조제권'을 두고 한의사와 약사가 한약 분쟁을 겪을 때였다. 정부가 1993년 4월 약사법 시행규칙 중 '약국은 재래식 한약장 외의 약장을 두어 이를 깨끗이 관리해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하자 한의계가 이를 약사의 한약 조제를 허용하는 것으로 보고 반발했고, 이후 한의사와 약사 측이 번갈아 학업과 생업을 멈추며 사회 문제로 번졌다.

경실련이 나서 '한방 의약분업 및 한약사 도입'안으로 중재하려 했지만, 약사들이 반발하자 협상에 참여한 권경곤 전임 약사회장이 사퇴했다. 김희중 회장 직무대행은 약사들의 집단 휴업 사태와 관련해 구속됐다. 1994년 1월7일 경실련 중재안에 더해 '한약조제시험(한조시)을 통과한 약사의 제한 범위 내 한약 취급 허용'을 골자로 하는 개정 약사법이 공포됐다.

고인은 1994년 1월11일 임시 대의원 총회에서 '약사법 재개정'을 내걸고 29대 회장에 당선돼 권 전 회장의 잔여임기 1년을 채운 뒤 1995년 2월 정기총회에서 30대 회장에 당선, 1998년 2월까지 4년간 약사회를 이끌었다.

1994년 "한조시는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가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듯하자 1995년 11월 소를 취하한 뒤 시험에 응시하는 쪽으로 약사들을 설득했다. 결과적으로 1995년 12월, 1996년 5, 6월 세 차례 치러진 시험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약사가 응시해 2만4천여명(당시 전체 약사의 )이 한약을 취급하게 됐다.

약사회 내부 갈등에도 휘말렸다. 강경 투쟁을 주장하는 이들이 1995년 12월 임시대의원총회에서 회장직 사퇴권고안을 상정하는가 하면, 고인이 1996년 정부의 한약 관련 종합대책에 약사회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사의를 표명했다가 번복하자 일부 회원들이 달걀을 던지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16, 17대 총선에 각각 새천년민주당과 무소속 후보로 부산 중·동구에서 출마하기도 했다.

유족으론 3남(정현철·정성철·정영철) 등이 있다. 빈소는 동아대병원 장례식장 VIP실, 발인 28일 오전 9시, 장지 밀양 선영. ☎ 051-256-7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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