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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70년, 피란수도 부산] ⑧ 피란의 외로움, 그리운 마사코
기사 작성일 : 2023-05-20 10:00:35
이중섭 모습


[부산 동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부산= 차근호 기자 = 1·4후퇴 때 부산으로 내려온 26만명의 피란민 중에는 천재 화가 이중섭도 있었다.

20일 부산 동구에 따르면 1930년대 일본 유학 시절 만난 일본인 아내 마사코와 슬하에 두 아들을 둔 이중섭은 1951년 부산으로 내려와 남구 우암동 피란민 수용소에서 첫 피란 생활을 했다.

이후 이중섭은 부산을 잠시 떠나 제주도로 가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과 함께 다시 부산으로 넘어와 본격적인 정착 생활을 했다.

이중섭 가족들은 동구 범일동 귀환 동포 마을 변전소 근처에서 판잣집을 짓고 생활한 것으로 알려진다.

비가 새는 허름한 판잣집에서 이들은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갔다.

극심한 생활고에 1952년 이중섭과 마사코는 결국 이별을 선택했고, 마사코는 영양실조에 걸린 아들을 데리고 친정이 있는 일본으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중섭은 가족을 떠나보낸 후 홀로 부산에 남아 낮에는 부두 노동자로 일하고 밤에는 술로 외로움을 달랬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술에 대한 열정만은 꺼뜨리지 않았다.

부산 동구에 만들어진 이중섭 계단


[부산 동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그는 광복동 일대 밀다원과 금강다방, 부둣가 술집 등을 전전하며 피란 예술가들과 교분을 나눴다.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는 가난한 화가 신세였지만 부산에서 '범일동 풍경'이라는 명작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는 일본에 있는 아내와 두 아들 태성·태현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와 그림으로 달랬다.

그가 생전 가족들에게 보낸 60여통의 편지는 이후 대중들에게 공개돼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자신을 타고 엉덩이를 익살스럽게 굴러대는 아이들의 모습, 가족과 함께 과일을 따 먹는 모습,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의 모습 등을 작품으로 남기기도 했다.

3년간 부산에서 머물렀던 이중섭은 전쟁이 끝난 뒤 1954년 서울로 상경했다.

이후 2년 뒤인 1956년 9월 6일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간장염으로 젊은 생을 마감했다.

부산 동구 관계자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중섭에게 부산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면서 "특히 동구는 이중섭이 삶의 무게 앞에서도 불멸의 예술혼을 불태웠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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