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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 참사'로 세 딸 잃고 장학재단 세운 정광진 변호사 별세
기사 작성일 : 2023-05-20 12:00:28
1996년 11월5일 삼윤장학재단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한 고인과 부인 이정희 여사


[촬영 하사헌]

이충원 기자 =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때 세 딸을 잃고 장학재단을 설립한 정광진(丁廣鎭) 삼윤장학재단 이사장(변호사)이 19일 오후 8시52분께 서울아산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재단측이 20일 전했다. 향년 만 85세.

고인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63년 제1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로 재직하다 1978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천직인 줄 알았던 판사 생활을 그만둔 것은 시각장애를 겪던 큰 딸 정윤민(丁允敏·1995년 사망 당시 29세)씨 때문이었다.

5살 때 눈 망막 뒤에 핏줄이 생기는 병에 걸려 한쪽 눈 시력을 잃었고, 12살 때 양쪽 눈을 모두 볼 수 없게 된 큰 딸의 시력을 찾아주려고 개업한 것. 윤민씨는 가족들의 노력에도 시력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1988년 미국 버클리대 유학길에 올라 석사 학위를 받았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시각장애인들에게 빛을 찾아주기 위해 서울맹학교 교사가 됐다.

하지만 윤민씨는 1995년 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때 둘째 유정(裕靜·1995년 당시 28세), 셋째 윤경(允卿·당시 25세)씨와 함께 참변을 당했다. 집에서 쓸 생필품을 사러 승용차를 타고 갔던 길이었다. 고인의 세 딸에 대한 그리움은 이듬해 6월에 발간된 추모문집 '나의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예수님'에 담겼다.

고인의 애끓는 부정(父情)은 장학재단 설립으로 승화됐다.

세 딸에 대한 보상금 7억원에 개인 재산을 더해 '삼윤장학재단'을 설립했고, 이를 큰 딸의 모교이자 첫 직장인 서울맹학교에 기증했다. 장학재단 이름 '삼윤'은 세 딸의 이름에서 따서 지었다. 고인은 재단설립 취지문에서 "맹인 학생들 가운데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유난히 많은 것을 봐왔습니다. 삼윤장학재단은 특히 이들에게 힘이 되고자 합니다"라고 밝혔다. 부인 이정희씨는 "맹인들에게 빛이 되고자 했던 윤민이의 못다 이룬 꿈을 우리 부부가 대신하기 위한 것"이라고 장학재단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서울맹학교는 1996년 11월5일 교정에서 재단 설립 기념비를 제막했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정 변호사에게 "丁변호사가 베푼 고귀한 사랑은 세 딸의 못다한 꿈을이루는 일일뿐 아니라 앞 못보는 어린 학생들에게 어둠을 밝혀주는 '희망의 빛'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유족으론 부인 이정희씨, 외손자 윤상원씨 등이 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22일 오전 7시30분. ☎ 031-787-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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