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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낙동강 하구 갈대밭은 쓰레기들의 종점"…수거작업 진땀
기사 작성일 : 2023-05-20 14:01:11
썩은 스티로폼


[촬영 박성제]

(부산= 박성제 기자 = "갯벌 위 갈대숲에 가려서 수십 년 동안 방치돼 썩어 가고 있는 스티로폼을 보세요. 이런 곳에 쓰레기가 있다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19일 오후 부산 사하구 을숙도에서 만난 박민규 바다살리기 국민운동본부 환경처장은 원형을 알아보기도 힘들 만큼 구멍이 숭숭 뚫린 스티로폼 덩어리를 들며 이렇게 말했다.

을숙도는 낙동강 끝단에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섬으로, 하천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이기도 해 '생태계의 보고'라고 불린다.

그중에서도 을숙도 서남단인 이곳은 낙동강 하구 습지로 바다가 맞닿는 연안 구역이다.

커다란 선박 용품 쓰레기


[촬영 박성제]

발을 내디딜 때마다 푹푹 들어가는 펄에 들어서자 성인 키보다 높은 갈대밭이 눈에 띄었다.

갈대를 헤쳐 섬 안으로 깊숙이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엄청난 양의 알록달록한 쓰레기들이었다.

어망, 선박 자재 등 해양 쓰레기는 물론 음료 페트병, 플라스틱 바구니 등 생활 쓰레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쓰레기가 모여 있었다. 심지어 골프채까지 발견되기도 했다.

펄 위 쓰레기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이날 현장에는 을숙도를 관할하는 사하구, 강서구 등 유관기관 직원들이 쓰레기를 수거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최근 이곳에서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있다는 사실이 환경단체를 통해 확인되자, 전국에서 처음으로 펄 위에 쌓인 쓰레기를 수거했다.

매트리스 쓰레기 옮기는 직원


[촬영 박성제]

박 환경처장은 "육지의 경우 사람들이 쓰레기를 발견해 민원을 넣기도 하지만, 이곳은 갈대밭에 가려져 아무도 쓰레기가 있는지 몰랐다"며 "주로 태풍이나 만조가 되면서 해양쓰레기가 쓸려 들어왔거나, 낙동강 상부에서 밀려 내려온 일반 쓰레기가 쌓여 쓰레기의 '종점'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번 들어온 쓰레기는 손으로 빼내지 않는 이상 평생 갈대밭에 그대로 박혀 있다"고 덧붙였다.

쓰레기를 끌고 이동하는 직원들


[촬영 박성제]

직원들이 쓰레기를 들어 올리자 펄에 살던 작은 게들이 기름으로 인해 무지갯빛으로 얼룩진 진흙 위로 뿔뿔이 흩어졌다.

펄 곳곳에는 검은색의 작은 고동들도 함께 살고 있었다.

잡다한 쓰레기와 작은 생명들이 함께 뒤섞여 공존하는 모습은 이질적으로 보였다.

박 환경처장은 "을숙도 하구는 이처럼 작은 생명들이 살아가는 곳"이라며 "최근 탄소 배출이 심각한 사회 문제인데, 습지가 엄청난 양의 탄소를 흡수한다는 점에서 존재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말했다.

펄 위 고동과 작은 게들


[촬영 박성제]

펄에서 청소하던 직원들은 쓰레기를 하나씩 들어 올릴 때마다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였다.

갈대밭 사이에 박힌 쓰레기를 수작업으로 일일이 빼냈으며, 자루에 넣은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끌어 옮겼다.

쓰레기를 주울 때 갈대에 눈을 다칠 수도 있어 고글을 끼고 일하는 직원도 있었다.

이처럼 업무 강도가 높다 보니 육지에서 쓰레기를 수거할 때보다 근무 시간이 배 이상 소요됐다.

한 직원은 "그동안 펄 위에서 청소한 적이 없어 제대로 된 도구나 장비가 없다"며 "육지라면 자루에 넣은 쓰레기를 어깨에 지고 옮기는데, 펄에서는 무게가 나가면 아래로 꺼지다 보니 자루를 끌고 이동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 몸만큼 커다란 쓰레기도 발견되는데, 통째로 옮길 수 없어 현장에서 잘라 조각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쓰레기 치우는 현장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이날 직원들이 4시간가량 주운 쓰레기양은 100ℓ짜리 자루 150개가량이다.

환경단체와 직원들은 앞으로 철새가 도래하는 시기와 기후 상황 등 을숙도의 환경을 고려해 쓰레기 수거 작업을 할 예정이다.

박 환경처장은 20일 "앞으로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구역도 청소해야 하는데, 이 경우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해 난관이 예상된다"며 "넓은 지역을 청소하기 위해서는 전용 쓰레기 수거 도구, 수륙양용차 등을 개발해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쓰레기 치우는 직원들


[촬영 박성제]

이어 "지금까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펄 위의 갈대밭 쓰레기 수거인 만큼 환경부와 해양수산부에서 예산 지원을 확대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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