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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대통령이 거부한 간호법안 국회서 수정 재의결 가능할까
기사 작성일 : 2023-05-21 08:00:03

구정모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돌려보낸 '간호법안'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이 지난 16일 거부권을 행사하기 전 이 법안의 통과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에 중재안을 제시한 바 있다.

민주당은 이 중재안을 거부하고 이달 내 간호법안을 재투표에 부치겠다고 지난 17일 입장을 정리했다.

국민의힘은 이에 본회의 표결 진행 시 이를 부결시키겠다는 당론을 정해 정국은 여야간 '강대강' 대결로 치닫는 양상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중재안까지 낸 상황이어서 막판 여야가 이견을 조정, 간호법 제정 갈등이 타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와 관련, 김성주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17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국회로 넘어온 간호법안을 수정·의결하는 것은 법적으로 안 된다고 밝혔다.

김 수석부의장은 현행 헌법에 따르면 "부결된(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에 대해 다시 투표하는 것"이라며 "재의결을 통해 (간호법안이) 가결되든 부결되든 끝나고 난 다음에 여야가 수정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의 말처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에 대해선 여야가 이견이 있는 부분을 수정해 재의결할 수는 없는 것일까. 과거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반려된 법안들은 어떻게 처리됐을까.

행진하는 대한간호협회


서대연 기자 =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19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간호법 거부권 행사 규탄 행진을 하고 있다.

◇ 헌법 53조 대통령 거부권 규정…정부는 수정요구 못하나 국회에서 대체입법 가능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헌법이 규정한 권리이다.

헌법 53조 2항에서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중략]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같은 조 3항에선 국회가 이런 재의 요구에 대해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전과 같은 의결을 하면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헌법 문언상 명시적인 언급은 없지만 국회에서 재의결할 때 대통령이 돌려보낸 법률안 그대로 하는 것으로 해석돼왔다.

재의결을 할 때 법률안을 수정해 의결할 수 있다면 법률 제정 절차를 다시 밟을 필요가 없다는 이점이 생긴다.

법률 제정은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법안이 의원 10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에 제출되면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본회의에서 심의·의결돼야 한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률안에 대해 여야가 이견을 조정해 수정 의결할 수 있으면 이런 과정을 생략할 수가 있겠지만 현행 헌법 체계에선 '언감생심'의 일이다.

단, 과거에 재의법률안을 수정 의결한 경우가 6건 있긴 했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 당시 제헌의회 때의 일로, 대통령 또는 정부의 의견이 일부 반영돼 의결됐다.

이후 1962년 5차 개정 헌법에 현재와 같이 '대통령은 법률안의 일부에 대해 또는 법률안을 수정해 재의를 요구할 수 없다'는 내용이 추가되면서 수정의결 사례는 더는 없었다.

물론 국회 차원에서 재의법률안을 수정 의결할 수 있으나 그럴 경우 다른 법률안이 된다.

2008년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에 관한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당시 김승열 법제처 법제 심의관은 "국회가 재의 요구된 법률안을 수정해 의결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이 경우에는 새로운 법률안의 의결로 보아야 할 것"이라며 "이에 대해 또 이의가 있으면 대통령은 다시 재의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에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은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 재정지원을 하는 내용의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 개정안'(이른바 택시법안)에 대해 2013년 1월 거부권을 행사했다.

개별 교통수단인 택시를 대중교통에 포함하는 것은 대중교통법의 입법 취지에 맞지 않고 대중교통으로 인정하지 않는 다른 교통수단과의 형평성 문제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거부권 행사의 이유였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택시 기사의 근로 여건을 개선하고 택시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대체법안인 '택시운송사업 발전을 위한 지원법안'(택시지원법안)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택시법안은 여야가 합의로 처리한 법안이어서 여야 모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반발하며 재의결을 추진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후 택시법안을 재의결할지, 택시지원법안을 새로 만들지를 두고 저울질하다가 결국 대체입법으로 돌아섰다.

결국 택시법안은 임기 만료로 폐기되고,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이하 택시발전법)이 제정됐다.

윤석열 대통령,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 행사


진성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 민주화 이후 대통령 거부권 행사된 법률안 중 재의결된 사례는 1건에 불과

다른 재의법률안들은 어떻게 처리됐을까.

국회사무처가 발간한 '2020 의정자료집'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전까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모두 66건이다.

이 가운데 민주화 이후인 노태우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는 16건이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 때의 2건을 더하면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국회로 법률안을 돌려보낸 사례는 모두 18건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정권별로 편차가 상당히 컸다. 노태우 정부가 7건, 노무현 정부가 6건으로, 이 두 시기가 가장 많았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노태우 정부 시기 7건 모두가 이른바 '3당 합당'(1990년 1월 22일) 이전 여소야대 시절인 1988년 7월∼1989년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안들에 대해 거부권이 행사됐다.

노무현 정부 때엔 6건 중 4건이 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시기의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들을 대상으로 했다.

물론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탄핵 역풍'에 힘입어 17대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 이후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법률안도 2건 있었다.

김영삼·김대중·문재인 정부 때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된 적은 전혀 없었고, 이명박 정부 때엔 1건, 박근혜 정부 시기엔 2건 있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선 집권 1년 남짓 만에 대통령 거부권이 두 차례 행사됐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효과가 상당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퇴짜'를 놓은 법률안 18건 중 재의결의 문턱을 넘어 법률로 확정된 사례는 1건에 불과했다.

이는 노무현 정부 때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최도술·이광재·양길승 관련 권력형 비리의혹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국회 의석 점유율이 에 불과해 야당들이 재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정도였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률안 18건 가운데 국회가 재의결을 추진한 사례는 8건이었고, 이중 앞서 언급한 1건을 제외한 7건은 모두 부결돼 폐기됐다.

8건은 재의결도 추진하지 못한 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1건은 사실상 임기만료로 폐기된 것이지만 여야간 이견으로 미처리 상태로 남게 됐다.

이는 '상시 청문회'를 주요 내용으로 한 '국회법 개정안'의 사례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5월 27일에 이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당시 19대 국회는 임기 만료(5월 29일)가 이틀밖에 남지 않아 이 개정안을 처리하지 못했고, 20대 국회가 개시됐다. 이에 야당은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한번 통과한 만큼 헌법 51조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논리를 폈다.

헌법 51조에 따르면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 등은 회기 중에 의결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폐기되지 않지만,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되면 폐기된다.

당시 야당은 국회법 개정안이 19대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만큼 아직 재의결이 진행되지 않았더라도 51조에 따라 폐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후 야당은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결을 추진하지 않았고, 결국 국회사무처는 이 개정안을 '미처리' 상태로 분류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사실상 '임기만료에 따른 폐기'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률안을 재의결할 땐 수정 의결을 할 수 없다.

재의결은 민주화 이후 성공한 사례가 1건에 불과할 정도로 드문 일이다. 아무리 여소야대 국면이더라도 거부권이 행사된 법률안이 재의결이라는 문턱을 넘기는 힘들다.

결국 간호법 제정이라는 결실을 보고자 한다면 무리하게 재의결을 추진하기보다는 이명박 정부 시기 택시발전법 사례와 같이 여야가 의견을 모아 대체입법을 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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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사무처 '2020 의정자료집' 내용 발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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