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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생석회 날리고 생나무 껍질 냄새에 두통…생지옥이 따로 없어"
기사 작성일 : 2023-05-25 18:00:29

(원주= 이재현 기자 = "평생 배 농사지으시면서 이런 몹쓸 병은 처음이라고 하셨던데…, 아버지까지 중환자실에 입원 중에 계시니 더 착잡합니다."

과수화상병으로 매몰 작업하는 과수원


(원주= 이재현 기자 = 25일 강원 원주시 한 과수 농장에서 관계자들이 과수화상병 감염목 및 인근 의심목 매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5일 오후 원주시 문막읍 비두리 A(79)씨의 배 농장에서 폐원 작업을 지켜보던 A씨의 아들(49)은 고개를 떨궜다.

아버지인 A씨 농장에서 올해 들어 도내에서 처음으로 과수화상병 확진 판정을 받은 탓도 있지만 입원 중인 부친의 건강이 무척 염려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간 질환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A씨는 이웃 주민에게 2∼3년 전부터 배 농사를 위탁했고, 두 달 전에는 급기야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A씨의 아들은 "입원 중인 아버지에게 몹쓸 병 소식을 전해 드렸더니 크게 낙담하셨다. 평생 배 농사지으시면서 그런 병에 걸린 적이 없으셨다면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그는 "어쩌겠어요. 아버지를 대신해 이웃 주민이 농사짓다가 이렇게 된 것을…, 올해 농사를 망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버지가 평생 일군 나무들이 저 모양이 됐으니 저도 답답하죠"라며 황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과수화상병 감염 농장 매몰 작업


(원주= 이재현 기자 = 25일 강원 원주시 한 과수 농장에서 관계자들이 과수화상병 감염목 및 인근 의심목 매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3천600여㎡ 규모의 과원에서 182그루의 배나무를 땅에 묻는 매몰 현장에는 굴착기 3대와 근로자 5명이 투입됐다. 뿌리째 뽑아 옮기고 묻어 생석회로 덮는 작업은 하루 종일 이어졌다.

A씨가 20∼30년째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운 배나무는 굵고 튼실했지만, 중장비 앞에서는 순식간에 뿌리째 뽑혀 종잇장처럼 우겨졌다.

'과수 구제역' 또는 '과수 에이즈'로 불리는 화상병은 사과·배에 주로 피해를 주는 세균성 식물병이다.

병에 걸린 나무는 흑갈색 병반이 나타나면서 잎이 시들고, 줄기가 서서히 마르기 시작해 결국은 검게 변하면서 죽는다.

뚜렷한 치료법이 없어 발생 농장 주변 100m 안에 있는 과수는 뿌리째 캐내 땅에 묻은 뒤 생석회 등으로 덮어 살균해야 한다.

배나무를 지탱하는 지주 시설을 제거하고 나무를 뿌리째 뽑아 5m 깊이로 판 구덩이에 넣어 석회 가루로 다짐하는 매몰 처리 현장은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과수화상병 감염 농장 매몰 작업


(원주= 이재현 기자 = 25일 강원 원주시 한 과수 농장에서 관계자들이 과수화상병 감염목 및 인근 의심목 매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생나무 껍질이 벗겨지면서 내뿜는 냄새는 속을 뒤집을 정도로 역했고, 석회 가루는 바람에 날려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생석회 가루가 날리는 매몰 현장을 지키고 있던 마을 주민들은 "채석장이 마을에 들어선 뒤부터 덤프트럭도 많이 다니고 먼지가 무척 많이 날려 도저히 살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 과수화상병까지 번져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토로했다.

A씨의 과원에서 ㎞ 거리를 두고 같은 날 과수화상병 확진 판정을 받은 또 다른 사과 농가로 이동하는 동안 마을 곳곳에는 '자연환경 파손하는 환경청은 각성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어지럽게 내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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