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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골목 막아선 불법주차, 소방차는 거침없이 밀고 나갔다
기사 작성일 : 2023-05-26 12:00:33
긴급출동 방해차량 강제처분 '차 밀기' 훈련


(울산= 장지현 기자 = 울산 남부소방서 물탱크차량이 긴급출동 방해차량 강제처분 훈련에서 승용차를 밀어내고 있다.

(울산= 장지현 기자 = "하나, 둘, 셋, 이제 밀어!" '쾅!'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초입을 불법 주차된 대형 세단이 버젓이 막고 있었다.

골목으로 진입하려던 소방차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세단 뒤 범퍼를 거침없이 충격한 뒤 밀고 들어갔다.

지난 25일 오후 울산시 남구 야음장생포동 한 골목에서 벌어진 이 긴박한 광경은 실제 상황은 아니다.

울산 남부소방서는 소방차 긴급출동을 방해하는 차량에 대한 강제처분 훈련을 이날 벌였다.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골목 어귀를 떡하고 버티고 선 차량을, 소방차가 피해서 진입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훈련이 시작되자 "차를 망가뜨릴까 걱정하지 말고 밀어버리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소방 물탱크차에 뒤 범퍼를 들이받힌 세단은 힘없이 앞으로 밀려났다.

긴급출동 방해차량 강제처분 '차량 손괴' 훈련


(울산= 장지현 기자 = 울산 남부소방서 긴급출동 방해차량 강제처분 훈련에서 깨진 승용차 유리창 너머로 소방호스가 통과해 있다.

소화전 옆에 불법 주차된 차량에 대응하는 훈련도 진행됐다.

안전모를 쓴 소방관이 망치를 내리쳐 차 유리를 깬 뒤, 뚫린 공간으로 소방호스를 통과시켜 소화전에 연결했다.

차량을 관통해 소화전과 이어진 소방호스는 굵은 물줄기를 뿜어댔다.

훈련에 참여한 소방대원은 "실제 출동 상황에서 소화전 물을 끌어와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불법 주정차 차량이 소화전을 가려 용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갓길에 불법 주차된 차량 측면을 소방차가 긁고 지나가는 훈련도 이어졌다.

찌그러진 차량 옆면에는 소방차의 붉은 페인트 자국이 남았다.

긴급출동 방해차량 강제처분 '강제 돌파' 훈련


(울산= 장지현 기자 = 울산 남부소방서 긴급출동 방해차량 강제처분 훈련에서 소방 물탱크차가 승용차 옆을 스쳐 지나가고 있다.

남부소방서 관계자는 "먼저 훈련해 보고 습득을 해야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상황을 가정해 훈련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2018년 소방기본법에는 소방 긴급출동 시 통행을 방해하는 주정차 차량에 대해 강제처분을 집행할 수 있다는 조항이 생겼다.

불법 주정차로 인해 소방차 진입이 늦어지는 바람에 29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가 계기가 됐다.

강제처분에는 통행을 방해하는 차량 옆을 스치는 강제 돌파, 차량을 끌어내는 강제 견인, 차를 밀어내는 차 밀기, 차 창문을 깨 소화용수를 확보하는 차량손괴 등이 있다.

이에 따라 소방차 긴급 출동 시 주정차 차량으로 통행이 어려우면 소방은 먼저 차주에게 즉시 이동 조치를 요구한 뒤, 차주와 연락이 닿지 않는 등 이동이 불가능하면 소방대장 지시 아래 강제처분을 집행할 수 있다.

소화전에 호스 연결하는 소방관들


(울산= 장지현 기자 = 울산 남부소방서 긴급출동 방해차량 강제처분 훈련에서 소방관들이 소화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소화전에 호스를 연결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 조항 신설에도 현장에서는 일선 소방관들이 여전히 강제처분 집행을 꺼리는 분위기다.

시민 재산에 손해를 끼치는 조치이다 보니 각종 민원과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119안전센터에서 근무하는 한 소방관은 "불법 주정차 차량이 길을 막고 있으면 진입을 위해 다른 길로 둘러 가야 하는데, 그만큼 화재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진다"면서도 "지금까지 강제처분을 집행한 사례가 많지 않아 막상 현장에서 집행하기가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법 개정 후 지난 5년간 실제로 집행된 강제처분은 고작 4건에 불과하다.

2021년 4월 서울 강동구 성내동 골목길 주택 화재 현장에서 최초 집행된 이후 지난해 충남 당진에서 1건, 올해 서울과 인천에서 1건씩 집행된 것이 전부다.

울산에서는 아직 강제처분을 집행한 사례가 없다.

긴급출동 방해차량 강제처분 훈련


(울산= 장지현 기자 = 울산 남부소방서 긴급출동 방해차량 강제처분 훈련에서 소방관들이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남부소방서 관계자는 "주차된 차 때문에 화재 진화가 어렵다면 망설이지 말고 강제처분해야 한다"며 "일선 소방관들이 져야 할 부담은 전혀 없다"고 당부했다.

소방차가 긴급출동 과정에서 차량을 강제처분했을 때, 사후 처리는 어떻게 될까. 주정차가 합법적인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남부소방서 관계자는 "적법한 주정차 차량을 어쩔 수 없이 강제처분했다면, 자치단체마다 편성된 예산으로 손실을 보상해 드린다"며 "다만 불법 주정차 차량은 보상할 의무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소방이 소방차 진입 곤란 지역은 이미 모두 파악하고 있지만, 불법 주정차 여부는 예측이 완전히 불가능하다"라면서 "긴급출동이 언제든 있을 수 있으니 내 가족과 이웃의 안전을 위해 불법 주정차를 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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