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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굽이 별천지] ⑤ 길은 새로운 길을 낳는다…세대를 잇는 '운탄고도'
기사 작성일 : 2023-05-27 09:01:18

[※ 편집자 주 =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의 발걸음은 길을 만들고, 그 길은 다시 사람을 모아 마을을 만듭니다. 강원도의 산과 강, 바다와 호수를 따라 굽이치는 길 끝에는 반짝이는 주민들의 삶이 모여 있습니다. 북적이던 발걸음은 지역소멸이라는 화두와 함께 잦아들고 있지만, 마을은 그 생생함을 되찾고자 새로운 사연들을 만들어갑니다. 길과 마을에 깃든 27개의 이야기를 가 1년 동안 격주로 소개합니다.]

운탄고도 1330


[강원랜드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정선= 배연호 기자 = '길은 새로운 길을 낳는다'

1957년 3월 강원 정선군 신동읍 함백역까지 철도가 뚫렸다.

석탄 생산을 위해 건설한 산업철도 함백선이다.

두메 산간 함백탄전에 길다운 길이 처음으로 생긴 것이다.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 소장은 2021년 발간한 '함백, 탄광으로 읽다'에 다음과 같이 썼다.

'1957년 3월 9일 영월부터 함백까지 ㎞의 산업철도인 함백선도 개통되었다. 두메 산간 마을인 함백은 희망의 땅이 되었다. …(중략)…. 함백에 가면 배고픔이 없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가진 것 없는 이들이 함백에 몰려들었다.'

1957년 함백선 개통


[대한석탄공사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1990년 함백광업소 재해 추방 궐기대회


[대한석탄공사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희망의 땅으로…함백 신도시까지 생겼다

그의 설명대로 길은 척박한 땅 함백을 희망의 땅으로 만들었다.

함백선 개통 3개월 후인 1957년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가 문을 열었다.

철도가 들어오고, 탄광이 문을 열자 사람들이 몰려왔다.

1963년 탄광 사택 500가구가 건립됐다.

요즘으로 말하면 함백 신도시가 만들어졌다.

함백이 번창하면서 신동읍 인구는 1976년 2만4천699명까지 늘었다.

진 소장은 "함백은 탄광을 낳았고, 탄광은 함백을 먹여 살렸다"고 말했다.

예미역


[촬영 배연호]

1960년대 석탄 운반용 차량


[대한석탄공사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1966년 예미∼사북∼고한 철도 개통

함백선은 또 다른 길을 만들었다.

정선, 태백 등 강원 남부 탄전지대에서 함백역까지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한 길'(運炭路)이다.

고한읍과 사북읍에는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등 우리나라 굴지의 민영탄광이 몰려있었다.

총길이 40㎞에 이르는 운탄로는 산등성이를 따라 삽과 곡괭이로 만들었다.

운탄로는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발전을 1966년 예미역에서 사북역을 거쳐 고한역까지 산업철도가 개통되기 전까지 석탄 운송을 담당했다.

하늘길의 1177 갱도


[촬영 배연호]

하늘길의 녹슨 광차


[촬영 배연호]

◇ 영화도 들어왔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1974년 연간 석탄 생산량 100만t을 돌파한 동원탄좌 사북광업소는 1978년에는 석탄생산 국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물류는 폐광지역에 돈을 가져다줬다.

사북광업소가 연간 석탄 생산량 100만t을 돌파하던 1974년 고한읍에는 식료 잡화 종합 소매점인 슈퍼마켓이 문을 열었다.

고한읍 인구는 4만명을 넘어섰고, 점포 수 200개의 고한시장은 불야성을 이뤘다.

길을 따라 영화도 들어왔지만, 안타깝게도 오래가지 못했다.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가 시행되면서 함백광업소(1993년 폐광), 정암광업소(2001년 폐광), 사북광업소(2004년 폐광) 등 모든 탄광이 문을 닫았다.

하늘길의 마을 흔적


[촬영 배연호]

하늘길의 탄광 흔적


[촬영 배연호]

◇ 시끌벅적하던 사람 흔적 곳곳에 남아

그러나 운탄로 곳곳에는 초등학교 터, 탄광 시설물, 마을 터 등 시끌벅적하던 사람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1980년대 제작 지도 만항∼박심 구간에는 서진탄광, 대유탄광, 인동탄광 등 당시 가동 광업소 위치와 구강동, 평화촌 등 마을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다.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시행으로 사람이 모두 떠났고, 남은 흔적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흐릿해지고 있다.

운락국민학교 터


[촬영 배연호]

운락국민학교 표지석 살피는 김부래 산악인


[촬영 배연호]

◇ 많은 사람이 아직도 과거를 기억한다

운탄로는 '고도'(古道)로 잊혀 갔다.

하지만 과거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직도 곳곳에 살아있다.

김부래(82) 산악인은 행, 정, 환 등 세문장의 앞 글자 하나만 희미하게 보이는 운락국민학교 표지석의 '행동 질서 차례 지키기, 정신 질서 고운 말 쓰기, 환경질서 내 집 앞 쓸기'라는 전 문장을 정확히 기억했다.

1967년 운탄로 아롱이 연못 근처에 설립된 운락국민학교는 1973년 현재 학교 터로 이전한 후 1991년 폐교했다.

하늘길에서 바라본 하이원리조트


[강원랜드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하늘길 이정표


[강원랜드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고산준령 구름 속에 숨어있던 고도 발견

운탄로가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던 2000년대 초 고한읍과 사북읍 일대에 대단위 관광시설인 하이원리조트가 들어섰다.

대단위 관광시설은 사람을 다시 불렀다.

사람들은 고산준령 구름 속에 숨어있던 길을 발견했다.

석탄 운반을 담당했던 '고도'(古道)는 하늘 아래 첫 길 '하늘길'로 부활했다.

도롱이 연못


[강원랜드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도롱이 연못


[강원랜드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남편의 무사 귀환 기도했던 도롱이 연못

하이원리조트는 정선군 고한읍 만항재에서 정선읍 사북읍 화절령까지 운탄로를 활용해 하늘길을 만들었다.

평균 해발고도 1천m 이상의 하늘길이다.

하늘길을 걷다 보면 1177 갱도, 도롱이 연못, 꽂꺾이재 등을 만난다.

1177 갱도는 사북광업소의 1960년대 초 개발 갱도고, 도롱이 연못은 과거 광부 아내들이 남편들의 무사 귀환을 기도했던 장소다.

연못에 도롱뇽이 살아 있으면 탄광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꽃꺾이재


[촬영 배연호]

만항재


[촬영 배연호]

◇ 이야기는 길처럼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정선군 사북읍과 영월군 중동면을 잇는 고갯길은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만발해 '꽃꺽이재'(화절령·花折嶺)로 불린다.

나그네와 나무꾼이 아름다운 꽃을 한 아름 꺾어 가는 예쁜 고갯길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길은 이야기로 생명을 얻는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람이다.

사람은 600만년 전부터 걷기 시작했고, 사람이 걷기 시작하자 길이 생겼다.

그리고 길 있는 곳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길처럼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진다.

하늘길 자작나무 숲


[강원랜드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하늘길 야생화 군락지


[촬영 배연호]

◇ 운탄로는 대한민국 석탄산업 반세기 역사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역사다.

운탄로 이야기는 대한민국 석탄산업의 반세기 역사다.

하늘길로 부활한 운탄로는 영월 청령포에서 시작해 삼척 소망의 탑까지 강원 폐광지역 4개 시·군을 잇는 총길이 ㎞의 '운탄고도 1330'으로 진화했다.

1330은 만항재의 높이다.

운탄로는 산업로드였다. 그리고 운탄로가 낳은 하늘길은 관광로드였다.

운탄고도 1330


[촬영 배연호]

운탄고도 1330


[강원랜드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운탄고도 1330 끝은 건강과 행복"

그렇다면 하늘길을 바탕으로 내륙에서 해안까지 이어진 운탄고도 1330은 강원 남부 폐광지역에 어떤 문명을 일구게 될까?

길은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가는 통로다.

강원 남부 폐광지역은 과거에 산업의 길을 걸었고, 현재는 관광의 길을 걷고 있다.

배낭을 메고 삼삼오오 또는 혼자서 운탄고도 1330을 조용히 걷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 길의 끝은 치유, 회복 등 건강과 행복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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