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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70주년, 피란수도 부산] ⑨ 교실 11번 옮겨도 배움은 계속
기사 작성일 : 2023-05-27 10:01:13
부산 영도구에 있었던 경기여고 피란학교 모습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부산= 차근호 기자 =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에는 군사·행정시설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교육시설도 옮겨왔다.

27일 부산시에 따르면 당시 부산에는 중·고등학교 52개교와 학생 2만8천여명이 피란을 온 것은 물론이고 전국의 대학들도 부산 시내 30여곳에 캠퍼스를 열었다.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10개 대학교는 공간이 협소하고 교수가 부족해지자 전쟁 이듬해인 1951년 2월 19일 '전시연합대학'을 공동 운영하며 첫 강의를 시작해 1952년 5월 31일까지 운영하기도 했다.

서울대는 대신동·송도, 남포동 등에 본관과 단과대 캠퍼스를 운영했고, 이화여대는 부민동에 30동 규모의 가교사를 지어 강의를 진행했다.

연세대는 1951년 10월 3일 영도구에 천막 교사를 독자적으로 개교했고, 1952년에는 영선동 현 부산보건고등학교 부지에 목조교사를 만들어 학생들을 교육했다.

연세대의 경우 전쟁 기간 뽑힌 신입생은 1천239명으로, 전시 중에도 입시 경쟁률이 대 1이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이화여대 피란학교에 있는 아이들 모습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대학뿐만 아니라 초·중·고등학교에서도 배움은 중단되지 않았다.

전쟁 초중반기에는 각급 학교들이 주로 전쟁과 관련된 교육을 하고 전쟁 물자를 만드는데 학생들을 동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란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군 장병들을 위한 위문편지 쓰기는 일상이었고, 학교 동아리들이 군부대와 군 병원을 방문해 위문공연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추운 겨울 군부대에서 김장 배추 씻기 봉사 활동을 했다거나, 여학생들의 경우 재봉틀을 이용해 군복을 제조하는 데 동원되기도 했다는 증언도 있다.

하지만 1951년 하반기 남북의 전선이 굳어지자 각급 학교에서는 일상을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전쟁 발발 석 달 뒤 바로 개학한 중구 영주동 봉래초등학교의 경우 전쟁 기간 산과 들, 지하실, 나무 밑, 공원 등 교실을 무려 11번이나 옮겨 다니면서도 교육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진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피란민들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봉래초등학교 천막 교사 모습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봉래초는 전쟁 이듬해부터 어린이날 기념 학예회를 열었고, 개교기념일 소풍을 다녀오기도 했다.

매년 가을에는 산 중턱에 있는 200평 정도의 임시 소운동장에서 운동회를 열었다.

청·백팀으로 나눠 달리기, 릴레이 그물 통과하기, 밀가루 속 엿 찾기, 기마전, 단체 줄 당기기 등을 하기도 했다.

체육 활동으로는 소나무 오르기를 배우고, 여름에는 해수욕장에 나가 수영을 하기도 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한국전쟁기 부산은 피란 수도이자 교육 수도였다"면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국민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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