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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고비 넘기고 종신집권 고지 오른 '21세기 술탄'
기사 작성일 : 2023-05-29 05:00:58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초상화 지나치는 주민


(앙카라 AFP= 지난달 2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한 주민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초상화와 슬로건이 적힌 광고판을 지나치고 있다.

(이스탄불= 조성흠 특파원 =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자신을 지칭하는 수식어로서 '21세기 술탄' 자리를 확고히 했다.

통치자를 의미하는 아랍어가 어원인 술탄은 튀르키예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의 황제로서 이슬람 종교 지도자를 겸한 절대 군주다.

1954년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에르도안 대통령은 빈민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자수성가형의 입지전적 인물로, 튀르키예 국부로 추앙받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라는 평을 받는다.

22세에 이슬람계 정당인 국가구원당의 이스탄불 청년지부장을 맡아 이슬람 정치운동을 시작했으며, 1994년 40세로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돼 돌풍을 일으켰다.

그가 2001년 창당한 이슬람계 정당이자 현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이 2002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튀르키예 최초의 이슬람계 정당의 단독 정부가 출범했다.

다만, 에르도안은 과거 연설 중 선동적 발언을 한 전과 탓에 바로 총리직에 오르진 못했고, 이듬해인 2003년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선으로 총리에 취임했다. 이후 연이은 총선 승리를 통해 튀르키예 최초의 3선 총리가 됐다.

튀르키예 경제는 국내총생산(GDP)이 2003년 3천146억 달러에서 2013년 9천578억 달러까지 3배가량으로 급증하는 등 에르도안 총리 재임 기간 성장 가도를 달렸고, 에르도안의 정치적 기반도 더욱 탄탄해졌다.

그러나 3연임으로 의원직을 제한한 당규 탓에 총리직 4연임이 불가능해진 에르도안은 대신 2014년 튀르키예 사상 최초의 직선제 대선을 통해 대통령이 됐다.

최고 실권자가 총리에서 대통령으로 자리를 바꾸면서 튀르키예 정치 구조도 급격히 대통령 중심제로 기울었다.

여기에 2016년 발생한 쿠데타 미수 사건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력 집중화를 오히려 가속하는 계기가 됐다.

쿠데타 이듬해인 2017년 제왕적 대통령제를 확립한 개정 헌법이 국민투표로 통과된 것이다.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비판에 시달리던 그에게 쿠데타 시도는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으로서의 정당성을 재확인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깃발 흔드는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지지자


(앙카라 EPA·LUSA= 튀르키예 총·대선을 사흘 앞둔 11일(현지시간) 수도 앙카라 푸르사클라르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자들이 건물 발코니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다.

그러나 2019년 지방선거에서 이스탄불과 앙카라 시장직을 야당에 내주면서 철옹성 같았던 그의 통치에도 균열이 시작됐고, 이번 대선은 그의 정치 인생에 최대 위기가 됐다.

최근 수년간 이어진 리라화 가치 폭락과 지난해 85%를 넘긴 초고물가로 인한 경제 위기가 민심 이반을 초래한 것이다. 여기에 지난 2월 튀르키예에서만 5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지진, 그리고 이에 대한 부실 대응 논란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론으로 이어졌다.

더욱이 선거전이 본격화하면서 6개 야당이 반(反)에르도안 기치 아래 공화인민당(CHP)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를 단일 후보로 내세우자 이번에야말로 20년 에르도안 집권에 마침표를 찍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각종 스캔들과 반정부 시위, 쿠데타까지 이겨낸 노련한 정치인은 이번에도 위기를 돌파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를 앞세운 선거 캠페인으로 보수 유권자층을 결집하면서 선거 전 예상을 뒤집고 1차 투표에서 끝내 승리했다.

민심이 크게 악화한 지진 피해 지역에서조차 대대적 재건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려세운 결과였다.

그는 1차 투표 승리 후 "야당이 여론조사 당이라면, 우리는 선거 당"이라며 자신만만해하기도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 대선 포스터에 비친 튀르키예 거리


[A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다만, 에르도안 대통령이 5년 뒤에도 승리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2017년 개헌 이후 치러진 두 번째 대선인 이번 선거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처음으로 1차 투표에 이어 결선투표까지 치러야 했다. 총선에서도 집권당인 AKP 주도 연합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긴 했으나, AKP 단독 의석은 295석에서 5년 만에 268석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이번 재집권 이후 국가 정책에 대한 대대적 변화나 개혁 역시 없을 방침이어서, 현재의 정치적 불만이나 경제난이 어떤 위기로 비화할지 예상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올해 69세인 그의 나이를 고령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건강 문제도 안심할 수만은 없다. 그는 대선 직전인 지난달 25일 방송 인터뷰 중 복통을 호소하며 인터뷰를 일찍 마친 뒤 외부 일정을 취소해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다.

튀르키예 정부는 그가 장염을 앓았다고 발표했고, 그는 나흘 뒤 공개 일정에 복귀했지만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면모는 다소 퇴색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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