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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in] "공익개발 차질" vs "교육권 중요"…위기의 택지지구내 대안학교
기사 작성일 : 2023-05-29 09:00:16

(광명= 김인유 기자 = "제가 볍씨학교에서 배우고 얻은 좋은 것은 일반 학교에서는 할 수 없는 활동들입니다. 개발 때문에 우리 학교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너무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볍씨학교를 존치하라"


[볍씨학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경기 광명시 옥길동에 있는 대안학교 '볍씨학교'가 정부가 추진하는 3기 신도시 광명시흥공공주택지구 부지에 포함되면서 학교 학생들이 배움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이 학교의 학생과 학부모, 시의회 등이 나서서 학교존치를 호소하고 있으나 일반 학교도 아닌 대안학교를 보호할 마땅한 법률이나 대안이 없는 실정이어서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다.

29일 볍씨학교에 따르면 이 학교는 광명YMCA 회원들이 2001년 세운 국내 최초의 초등 대안학교(미인가)로, 유치원과 초·중등 교육과정에 78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도덕산·개웅산과 가깝고 넓은 마당과 운동장도 있어 볍씨학교 학생들은 공부뿐 아니라 제도권 학교에서 배우기 어려운 목공, 요리, 산 타기 등 활동을 하며 삶을 배워나가고 있다.

그러다가 2010년 이 학교가 당시 국토해양부가 추진하는 보금자리주택지구에 편입되면서 학교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가 찾아왔다.

2015년 주택경기 침체와 공급과잉 우려 등의 이유로 지구 지정이 해제되면서 한시름을 덜었다.

그러자 이 학교 졸업생 및 재학생 학부모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기존의 컨테이너 교실 대신 철골조로 된 3층짜리 교실 3동을 지어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개선했다.

기쁨도 잠시, 이 일대가 2022년 11월 국토부의 3기 신도시 광명시흥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되면서 이번에는 정말로 교육 터전을 잃게 될 위기가 현실이 됐다.

학부모들은 대책위를 만들어 국토부와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학교 존치 건의서를 보내고 시민들의 지지가 담긴 서명 8천부를 국토부에 전달했다.

또 광명시의회를 찾아가 아이들이 지금의 학교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고, 세종시 국토부 청사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집회를 열기도 했다.

볍씨학교


[볍씨학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볍씨학교의 안타까운 사정을 알게 된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지역 정치권이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광명시민단체협의회는 지난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금 당장 눈앞에 펼쳐진 개발 논리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래의 주인인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이라고 강조하면서 "국토부와 시행사인 LH는 신도시 광명시흥공공주택지구 계획에 볍씨학교 존치를 포함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광명시의회는 지난 22일 볍씨학교 존치 요구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에도 볍씨학교가 지금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교육을 이어 나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토부와 LH는 학교를 존치할 수 있는 조건과 근거가 있는지 법률적인 검토를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공주택 특별법 제27조의2 제1항에서는 공공주택사업자가 주택지구에 있는 기존 건축물이나 그 밖의 시설을 이전하거나 철거하지 않아도 지구조성사업에 지장이 없다고 인정해 대통령령이 정하는 요건을 충족하면 이를 존치하게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령이 정하는 4가지 요건은 ▲ 건축물이 관계 법령에 따라 인허가 등을 받았을 것 ▲ 주택지구의 토지이용 계획상 받아들일 수 있을 것 ▲ 해당 건축물 존치가 공익상 또는 경제적으로 현저히 유익할 것 ▲ 해당 건축물 등이 해당 지구조성사업의 준공 이후까지 장기간 활용될 것으로 예상될 것 등이다.

볍씨학교는 지난해부터 경기도교육청에 대안 교육기관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대안교육 기관의 등록 및 운영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 대안교육기관법이 지난해 1월 시행된 데 따른 조치다.

볍씨학교 관계자는 "일반 학교는 개발사업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데 대안학교는 보호받지 못한다"면서 "지금 학교 용지를 보상받더라도 다른 지역의 땅을 사서 옮기기에는 보상금이 턱없이 부족해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어 "개발로 학교의 재산권과 학생의 학습권이 일방적으로 빼앗겨지는 지금의 상황을 아이들도 안다"면서 "이게 나쁜 거 아니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법과 절차가 그렇게 되어 있다고 답해주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볍씨학교를 존치해주세요"


[볍씨학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개발에 밀려 학교 보금자리를 잃어버리는 일은 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2010년 광명시흥 보금자리 주택지구 지정 이후 시흥의 대안학교 '산어린이학교'는 개발될 것을 우려해 미리 2015년 부천으로 학교(현재 산학교)를 옮겨 갔다.

당시 같은 처지의 광명 볍씨학교와 연계해 학교 존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산학교 관계자는 "당시 학부모들이 학교가 없어진다며 난리가 났었다. 대안을 모색하다가 부천으로 학교를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면서 "개발행위가 교육이 일어나는 학교를 밀어버리면 안 된다. 볍씨학교를 응원한다"라고 말했다.

또 현재 하남의 한 대안학교도 신도시 개발 부지에 포함되면서 보상 후 다른 공간으로 이전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볍씨학교의 강옥희 교장은 "수도권의 대안학교는 학교 특성상 주로 자연환경과 접한 곳에 있는데 이런 곳까지 개발이 되면서 언제 학교가 없어질 위기에 처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현재 경기도교육청에 등록된 도내 대안학교는 54개로 파악된다. 그러나 미등록 시설까지 포함하면 200여곳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도교육청도 볍씨학교 관계자와 간담회를 했지만, 대안학교 존치 문제에 대한 교육청 차원의 해법이나 지원책은 없는 상황이다.

전국 비인가 대안학교의 교사, 학부모, 학생이 모여 설립한 대안교육연대 이홍우 사무국장은 "볍씨학교는 국내 최초의 초등대안학교라는 역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존치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면서 "앞으로 개발행위를 할 경우 일반 학교와 대안학교를 한데 묶어 교육지구로 만드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대안학교라는 이유로 존치를 허용해 줄 경우 공익목적의 개발사업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으며, 수용되는 다른 건축물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수도권의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공익목적의 도시개발 등을 할 경우 마을 전체가 수용되기도 하는데 대안학교라고 존치를 허용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장애인 특수 학교처럼 다른 지역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시설과 대안학교는 차이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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