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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침투 막으려고" 북한산 등산로서 수십년째 개 사육
기사 작성일 : 2023-05-30 08:00:30
도봉구 방학동 북한산 국립공원 내 무단점유지


[촬영 김정진]

김정진 기자 = "군인으로서 사명감 때문이다. 국가 안보에 헌신한 사람을 범죄자 취급하다니 화가 난다."

지난 26일 오전 서울 도봉구 북한산국립공원 등산로. 산책길에 뜬금없이 들어서 있는 개 사육장 인근에서 A씨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군인 출신이라는 A씨는 1968년 1·21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이곳이 북한군 침투 경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자발적으로 지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원래는 간첩을 막으려고 국립공원 땅을 점유하다가 버려진 개들도 키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동물학대 아니냐는 주민들 주장에는 "누군가가 버려두고 간 개들을 데려와 돌봐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사육장 주변에는 이동형 카트, 먼지와 흙이 뒤덮인 개집, 쓰레기 등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자물쇠로 출입이 막힌 철조망 너머로 '위험! 개 주의', 'CCTV 녹화 중' 등의 문구가 보였다. 안쪽에는 개 두 마리가 쇠사슬 목줄을 차고 있었다.

주민들은 개 사육장이 미관상 좋지 않을뿐더러 개들 안전도 우려된다며 토지를 소유한 산림청을 비롯해 도봉구청, 북한산 관리사무소 등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A씨는 "국가 안보를 위해 수십 년째 이 지역을 지켜왔다"며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인근에 사는 이지영 씨는 "동네 산책로인데 철조망과 불법 구조물 때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기괴하고 공포스럽다"며 "안에 강아지 10여 마리가 있는데 모두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도봉구 방학동 북한산 국립공원 내 무단점유지


[촬영 김정진]

매일 아침 이곳을 지난다는 도봉구민 조모(82)씨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10년쯤 전부터 (영역이) 자꾸 넓어지고 있다"며 "등산할 때마다 시야를 가려 답답하다. 이런 걸 보고 좋다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했다.

관련 기관은 개 사육장을 무단점유로 규정하고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북한산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산림청에서 국유재산관리법에 따라 행정처분을 하고 있다. 구조물 철거 등 요청이 들어오면 협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도봉구청도 이달 두 차례에 걸쳐 A씨에게 철거를 명령했다.

도봉구청 동물복지팀 관계자는 "동물 학대가 의심된다는 민원이 여러 차례 들어왔지만 동물보호법상 학대는 도구를 이용해 상해를 입히거나 죽이는 경우여서 A씨에게 적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도봉구청은 관내 전역에서 허가받지 않은 가축 사육을 금지한 조례에 따라 A씨에게 철거를 요구했다. 구청 관계자는 "다음달 말까지 철거 명령에 불응할 경우에는 경찰 고발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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