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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전전' 안타까운 죽음…필수의료 붕괴에 되풀이되는 비극
기사 작성일 : 2023-05-31 18:00:35
병원 응급실


[촬영 권지현]

김병규 오진송 권지현 기자 = 응급 환자가 치료할 병원을 찾아 전전하다가 안타깝게 숨지는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중환자실이나 응급실 의료진 부족 등 필수의료 붕괴 상황이 이런 비극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응급의료 대책을 발표했지만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으려면 보다 근본적이면서 강도 높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 받아줄 병원 못찾아 구급차에서 숨지는 환자들

31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30일 새벽 경기 용인시에서 후진하던 차량에 치인 70대 A씨가 구급차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고 접수 10분만에 구급대원들이 A씨를 구조해 인근 대형병원 12곳에 A씨를 받아줄 수 있는지 문의했으나 중환자 병상 부족 혹은 응급 의료진 부족 등을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

결국 사고 장소에서 한참 떨어진 의정부의 한 병원으로부터 수용이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으나 의정부로 향하는 도중 구급차에서 심정지가 발생해 A씨는 사고 발생 2시간만에 숨을 거뒀다.

A씨를 수용하지 못한 병원 중에는 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는 병원이 3곳이나 포함됐지만 중환자실에 빈 자리가 없었다.

비슷한 사례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대구의 한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B양이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찾다가 숨지기도 했다. 당시도 병원들은 병상이나 의료진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의료기관으로 이송할 것을 권유했고 B양은 2시간 넘게 응급실을 찾아 전전하다 심정지로 숨졌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 환자 수용을 거부한 의료기관에 보조금 지급 중단 등 행정처분을 내렸었다.

작년 7월에는 서울아산병원의 30대 간호사 C씨가 병원 내에서 뇌출혈 증상이 발생했으나 수술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숨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C씨는 이 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병원 내 수술이 가능한 신경외과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숨졌다. 서울의 가장 큰 대형병원에서, 그것도 해당 병원 의료진마저 응급수술을 받지 못해 숨졌다는 사실이 심각성을 더했다.

전북소방본부 구급차


[전북소방본부 제공]

◇ 당정 "병원수용 의무화"…의사들 "현실 무시한 정책"

이처럼 잇따르고 있는 사망 사례와 관련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응급의료 체계 붕괴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정부는 지난 3월 제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을 발표하고 40곳인 권역응급의료센터를 50~60곳의 중증응급의료센터로 확충해 중증응급환자가 전국 어디서나 1시간 내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중증, 중등증, 경증 응급의료기관을 명확히 구분하고 환자가 중증도에 맞는 응급의료기관을 이용하도록 개편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하지만 병상과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에서 센터 수를 늘리거나 환자 구분 체계를 바꾸는 것이 얼마만큼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찬용 서울대병원(외상외과) 교수는 "장비와 시설, 인력이라는 '3박자'가 맞아야 개선이 가능하다"며 "병상을 비워놨을 때 빈 병상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날 경기 용인시 사례의 경우 A씨를 받지 않은 병원들은 중환자 병상뿐 아니라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의료 현장에서는 정부가 페널티(처벌)만 주고 제대로 된 개선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많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응급의료진들을 희생양 삼아 공분을 돌린다고 예방가능한 응급, 외상환자 사망률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법적 처벌이 가시화될 때는 응급의료진들의 이탈이 더 가속화돼 응급의료가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날 당정협의에서 '구급차 뺑뺑이 사망 사건' 관련 보완책을 논의하고 "지역응급의료상황실을 통해 환자 이송시 병원수용을 의무화하겠다"고 대책을 내놨다.

병상이 없는 경우에는 경증 환자를 빼서라도 응급환자에 대한 병상 배정을 할 의무를 부여하겠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불가능한 일로, 현실을 무시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어디까지가 응급이고 어디까지가 경증인지는 치료를 해봐야 하는 것"이라며 "경증이라고 해서 (응급실에서) 내보냈다가 환자가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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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보건의료정책실장과 대화하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하사헌 기자 =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에서 임인택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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