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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공공임대주택 늘리면 출생률도 오를까?
기사 작성일 : 2023-06-02 07:00:16

이웅 기자 우혜림 인턴기자 = 전세 사기 피해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주거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시민단체 재단의 박래군 상임이사는 지난달 23일 MBC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지금은)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높일 수 있는 시기"라며 "장기 공공임대를 제공하면 주거권도 안정되고 출생률도 높아진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전세 사기 피해로 드러난 주거 안전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 취지로, 공공임대주택으로 주거권을 안정시키면 출생률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공공임대주택의 보급이 출생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주거지원


[제작 정연주] 일러스트

공공임대주택은 시장에서 자력으로 집을 사거나 거주를 유지하기 어려운 이들을 대상으로 저렴하게 거처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주거복지 정책 수단이다. 공공임대주택은 본래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공급이 이루어지다가 '주거 부담'이 저출생의 원인으로 부각되면서 청년과 신혼부부도 정책 대상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산하 토지주택연구원은 2020년 발표한 보고서 '저출산 대응 주택 정책 및 계획 방향 연구'를 통해 공공임대주택과 출생률의 상관관계에 대해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가구의 평균 자녀 수는 명으로 민간 전월세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가구(명)보다 약 명 많았다. 이는 연령대와 소득 수준 등이 일정하고 주택 입주 당시 자녀가 없는 가구들을 대상으로 거주 1년이 지난 이후의 평균 자녀 수만을 비교 분석한 결과다.

LH토지주택연구원은 이에 대해 "민간 전월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거비 부담이 적고 장기간 안정적 거주가 가능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저출생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임차 가구의 거주 형태가 출산에 미치는 영향' 연구


[출처=LH토지주택연구원 보고서 '저출산 대응 주택 정책 및 계획 방향 연구'(2020). 재판매 및 DB 금지.]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할수록 '둘째'를 낳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다.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는 2022년 논문 '공공임대주택이 신혼부부 출산 간격에 미치는 영향과 정책적 시사점'에서 서울의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한 청년과 신혼부부 976가구의 출산 간격을 분석했다. 그 결과 공공임대주택 입주가 첫째 자녀를 출산하는 데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둘째 자녀를 출산할 가능성을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공공임대주택이 혼인율을 높인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캐서린 셰스터 워싱턴앤리대학교 경제학 교수가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활발했던 1950~1970년 미국의 인구총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 밀집 지역에 거주하는 16~24세 여성(비흑인)의 혼인율이 타지역에 비해 높았다. 높은 혼인율은 궁극적으로 가구 형성에 영향을 미쳐 출생률에도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국내외 연구들에 비춰볼 때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결혼과 출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렇다면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기만 하면 출생률이 오른다고 볼 수 있을까?

청년·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


서울 종로구의 한 매입임대주택. [ 자료 사진]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전체 주택 수에서 공공임대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0년 기준 약 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32개국 중 9위에 해당한다. 국토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OECD 국가 간 상이한 산정기준을 감안해도 임대주택 공급 수준이 상위권에 진입한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2020년 명에서 2021년 명으로 낮아져, 2013년부터 줄곧 OECD 회원국들 가운데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 출생률이 1명 미만으로 떨어진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 양적 수준이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진입했다는 주장과 달리 출생률은 여전히 세계 최하위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2020년 OECD 공공임대주택 재고율


[출처=OECD 홈페이지. 재판매 및 DB 금지.]

이는 다른 OECD 회원국들과 달리 안정적인 장기 거주가 어려운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 제도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 전체 재고율은 177만5천호인데 이 중 '영구임대주택'은 12%, '50년 임대주택' 6%, '30년 임대주택' 33% 수준이고, 나머지 '분양전환용 임대주택'과 '전세임대주택'이 약 30%를 차지한다. 그런데 분양전환용 임대주택은 5~10년 단기간 임대 후 소유권을 이전하는 형태라 주택 구매 시점을 유예시킬 뿐이고, 전세임대주택은 민간 소유 주택을 저렴하게 재임대해주는 주거비 보조 성격이어서 실질적인 주거 안정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는 대부분 20~30년 이상 장기 거주가 가능한 해외 사례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박미선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발표한 논문 '주거권 실현 수단으로써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발전 경로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찰'에서 이러한 물량들을 제외하고 실제로 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은 절반 이하라고 지적했다.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 규탄 기자회견


[ 자료사진]

게다가 우리나라는 그나마 공급되고 있는 공공임대주택도 출산과 양육에 부적합하다는 지적도 있다. 공급되는 주택의 공간이 협소하고 거주 환경이 열악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 '저출산 대응 사업 분석·평가'(2021)에 따르면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제공되는 공공임대주택인 '행복주택'의 경우 2020년 말 기준 6개월 이상 미임대된 물량이 (5천519호)에 달하는데, 주택 평수가 작을수록 미임대 비율이 높았다.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의 박진백 부연구위원은 "현재 공급되는 공공임대주택은 지역에 따라 인프라 차이가 나거나 낙인 효과가 발생하는 등의 문제로 미분양 비율이 높다"라며 "입주자가 결혼과 출산, 양육을 계획하고 실현하는 모든 단계에서 주거 불안이 해소될 수 있도록 양질의 공급이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LH 행복주택 공실 현황 점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행복주택의 공실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편 집을 주거공간이라기보다 소유물이나 투자자산으로 여기는 우리나라 문화도 출생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13년 보고서 '주거환경이 출산에 미치는 영향과 정책과제'에서 주택 소유에 대한 문화가 강하고 임대주택의 공급량이 적으며 임대가격이 비싼 사회에서는 주택의 소유 여부가 결혼과 출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즉 집을 거주 공간이 아닌 자산 형성의 수단으로 여길 경우 결혼과 출산에 드는 비용을 집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경우 주거가 안정돼도 내 집을 마련하거나 더 큰 자산을 형성하기 전까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할 수 있다.

부동산 시장(CG)


[TV 제공]

저출생 대책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유럽 국가들은 공공임대주택을 비롯한 주거 복지 정책을 그 기반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인데, 한 명 이상의 어린이를 부양하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주거 시설을 정부에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스웨덴은 만 18세 미만의 아동이 있는 가정에 주택 수당을 제공하고 한부모 가정에게 임대주택 분양 우선권을 부여하는 등 저출생 대책으로서 주거 안정을 우선시하고 있다.

이재희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원은 "(공공주택 제도가 잘 갖춰진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주거를 공공재해로 인식하고 있다"며 "주거를 복지의 기초라고 생각하는 관점이 사회보장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쳐 출생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의 사회주택(공공주택) 배분 모델과 특징


[출처=국토연구원 논문 '주거권 실현 수단으로써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발전 경로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찰'(2023).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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