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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듯…당국만 "헬로 홍콩"
기사 작성일 : 2023-06-03 08:00:58
홍콩


[신화 ]

(홍콩= 윤고은 특파원 = '미식의 중심지 홍콩 로컬 맛집 완전 정복'.

지난 1일 홍콩관광청이 뿌린 보도자료 제목이다.

한국 소셜미디어에 우르르 올라온 '주경, 야경 모두 아름다운 홍콩' 같은 홍콩 관광 게시물들을 보면 당장 홍콩행 비행기표를 끊고 싶어질 듯하다.

실제로 지난달 16일 홍콩 최대 항공사 캐세이퍼시픽이 한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무료 항공권 1만6천장을 뿌리는 응모 행사를 홈페이지에서 진행하자 순식간에 13만명이 몰려들어 행사는 25분 만에 끝났다.

앞서 홍콩 정부는 지난 2월 "홍콩에서 만나자"며 무료 항공권 50만장을 6개월에 걸쳐 세계 관광객에게 순차적으로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굳게 닫았던 국경을 올해 1월 다시 열면서 개시한 관광객 유치 캠페인 '헬로 홍콩'의 일환이다.

이후 홍콩관광청이 후원한 홍보 프로젝트가 절찬리에 가동 중이다. 홍콩의 맛집들을 탐방하고 멋집들을 구경하며 각종 볼거리를 소개한 콘텐츠들이 쏟아져나온다.

'제로 코로나' 3년간 경제 악화에 시달린 홍콩인들도 몰려오는 관광객들이 반갑다.

지난달 31일에는 홍콩의 보험사들이 1분기 중국 여행객들에게 판매한 생명보험이 전년 동기보다 28배 급증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화려한 현지 경매 시장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1분기 홍콩 방문객은 전년 동기보다 383배 늘어난 441만명이다.

작년 한 해를 통틀어 홍콩을 찾은 여행객이 60만명이었는데, 올해 들어 석 달 만에 방문객 수가 그 7배 이상 늘어났으니 여기저기 장사가 잘된다.


(EPA= 지난 3월 30일 홍콩을 찾은 중국 단체여행객들.

하지만 그 이면에서 홍콩은 자유를 잃어가고 있다. 언론·표현·집회·결사의 자유가 잠식되고 있다.

관광객은 몰려오는데 정작 홍콩인들은 떠난다.

지난달 말 영국 독립학교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 사립학교에 재학 중인 홍콩 학생 수가 지난 2년 새 거의 5배 급증했다.

미국, 영국 등 외국인들도 홍콩을 많이 떠났다.

지난 4월 홍콩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산하에 22개 학교를 운영하는 홍콩 최대 국제학교 그룹인 ESF와 다른 국제학교 3곳이 2년 연속 외국인 학생 등록 비율(70%)을 충족하지 못했다.

2019년까지만 해도 ESF 계열 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다른 국제학교들도 대부분 입학을 위해 대기를 해야 했다.

그러나 제로 코로나와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에 따른 외국인 등의 홍콩 탈출 흐름, 이른바 '헥시트'(HONGKONG EXIT)가 3년간 계속된 끝에 ESF에서 외국인 학생 미달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홍콩의 인구는 2019년 750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를 걸어 지난해 말 기준 733만여명을 기록했다.

지난달 18일 한국 '2023 광주 인권상'을 홍콩 인권변호사 초우항텅이 수상했다는 소식에 홍콩 민주 진영 활동가들은 반색했다.

비록 구속 중인 초우항텅은 시상식에 못 갔지만, 홍콩 민주 활동가들은 그의 수상 소식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하며 기뻐했다.

초우항텅은 홍콩에서 30년 넘게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촛불 집회를 주최해온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의 부주석으로 활동하다가 구속됐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자칫 그가 왜 구속됐는지 잊힐 수도 있는 분위기다.

홍콩에서는 지금 '역사 지우기'가 한창이다. 톈안먼 시위, 홍콩 반정부 시위와 관련된 기록과 서적들이 자취를 감췄다. 홍콩 대학들에 전시됐던 여러 톈안먼 시위 추모 조형물들도 싹 철거됐다.

마치 그간 촛불집회도, 시위도 없었던 듯 관련 흔적들이 빠르게 지워지고 있다. 비판의 목소리도, 비판채널도 절멸 위기다.

2019년 반정부 시위로 1만여명이 체포됐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금껏 250여명이 체포됐다. 3년간 약 20만명이 외국으로 떠났다.

"맛집과 멋집이 넘친다"는 홍콩에서 말이다.

2020년 6월 4일 홍콩의 촛불 집회


(EPA= 2020년 6월 4일 홍콩 빅토리아 파크에서 열린 톈안먼 민주화 시위 추모 촛불 집회. [EPA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국경은 3년 만에 열렸지만, 홍콩인들이 수십년간 누려왔던 선택과 비판, 추모와 기억의 자유는 닫히고 있다.

홍콩 야권 인사 47명이 기소된 최대 규모 국가보안법 재판을 지난 넉 달간 60회 방청했다는 한 홍콩 활동가는 자위한다. "그래도 여기가 중국 본토보다는 자유롭고 폭탄이 떨어지는 우크라이나도 아니지 않나."

떠들썩한 '헬로 홍콩'의 뒤에서 누군가는 역사를, 관련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오는 30일이면 중국이 만든 홍콩국가보안법이 만 세 살이 된다. 무정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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