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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성'에서 '만리경'으로…달라진 북한 위성 작명법
기사 작성일 : 2023-06-04 09:00:02
북한, '실패한' 위성 발사 장면 공개


(평양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지난달 31일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발사장에서 쏜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의 발사 장면을 1일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했다. 이 로켓은 엔진 고장으로 서해에 추락했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발사 후 2시간 30여분 만에 실패를 공식 인정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김지연 기자 = 북한이 지난달 31일 쏘아 올린 군사정찰위성에 '만리경 1호'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위성 명칭으로 고수했던 '광명성' 시리즈는 일단 명맥이 끊기게 됐다.

'광명성'(光明星)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우주 개발에서도 선대의 색채를 지우고 자기색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일 위원장은 1998년 위성을 처음 발사하면서 '광명성 1호'라 명명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을 '광명성' 또는 '백두광명성'으로 지칭한다. 지도자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우상화 작업의 결과물로, 김일성의 별칭 '태양'에 조응하기도 한다.

김일성·김정일 생일이 북한에서 각각 '태양절'·'광명성절'로 불리는 이유다.

2009년 '광명성 2호'에 이어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 뒤에도 광명성 3호 1·2호기(2012년), 광명성 4호(2016년) 등 우주발사체를 발사할 때마다 탑재 위성에는 모두 '광명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번에 달라진 것이다.

새 위성 명칭인 '만리경'은 사전적으로 '만리를 보는 망원경'이라는 의미로, 상대 군사시설을 들여다보는 '눈'을 갖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정찰위성에는 제법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위성의 종류가 다르니까 광명성을 계속 안 쓰고 거기에 맞는 만리경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발사한 위성들은 정상 작동하진 않고 있지만 지구관측위성 등이었고, 정찰위성 발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 위원장이 7년 만에 발사한 위성에 아버지의 이름을 지우고 새 이름을 붙인 데는 본인의 업적을 부각하겠다는 생각도 반영됐을 수 있다.

북한은 2021년 4월 제정한 '혁명사적사업법'에 김정은을 개인 우상화의 대상으로 처음 명시하는 등 김정은 우상화 작업이 갈수록 강화하는 기조인데, 이런 분위기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

'만리경'은 북한 매체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종종 쓰이는 단어이기도 하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대남기구)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2016년 광명성 4호가 우주를 돌고 있다고 주장하며 "과학기술! 이것이야말로 자강력의 근본 초석이며 그 승리의 필연성을 확고히 내다볼 수 있게 하는 만리경이 아니겠는가"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정찰위성을 탑재한 신형 발사체의 이름인 '천리마 1형'은 할아버지 김일성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다.

'하루에 천리를 가는 말'을 의미하는 '천리마'는 멀리 날아가는 우주발사체에 어울리는 이름이기는 하지만, 1950∼1960년대 6·25 전쟁 직후의 어려운 환경을 딛고 경제 성장을 이뤄낸 북한 대중운동인 '천리마 운동'을 떠올리게도 한다.

현재 북한이 코로나19에 따른 국경 봉쇄와 대북 제재 장기화로 경제난이 악화했다는 점에서 전후 경제도약 시절 '천리마 정신'을 상기함으로써 사기 진작과 내부 결속을 꾀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할아버지를 연상시키는 복장을 하는 등 '백두혈통 1세대' 이미지를 차용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왔다. 지난해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1953년 김일성'과 흡사한 원수복 차림으로 등장해 이목을 끈 게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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