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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선생님 덕에 아이와 함께 처음 등산"…38년 중증장애 복지 외길
기사 작성일 : 2023-06-04 09:00:34
손영미 원장


[촬영 황수빈]

(대구= 황수빈 기자 = "중증 장애 아이를 둔 부모가 '선생님 덕에 처음으로 아이와 함께 등산을 다녀왔어요'라고 말할 때 느끼는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어요."

대구 수성구에 있는 '숲 중증장애인 다수 고용 사업장'은 38년간 중증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해온 손영미 원장이 지난 2013년 장애인들의 고용을 위해 세운 비영리 재단이다.

피아노치며 즐거운 음악 시간


[손영미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손 원장은 지난 1일 사업장을 찾은 기자에게 재단을 운영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에서 느낀 점들을 담담하게 풀어나갔다.

손 원장이 처음 중증 장애인들을 위해 일을 시작한 건 1985년 남구의 한 뇌병변 유치원이었다.

갓 대학을 졸업한 23살의 손 원장은 '장애 아이들을 잘 돌볼 것 같다'는 한 수녀의 이끌림에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뇌병변 아이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동, 식사 등 일일이 도와줘야 한다.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젊은 청년에게 버거울 수 있음에도 손 원장은 그곳에서 20대의 모든 청춘을 보냈다.

손 원장은 "아침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아이들의 양치질"이라며 "뇌성마비 아이들은 입을 잘 못 벌리거나 침을 계속 흘리기 때문에 구강 자극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손 원장은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눈을 반짝이며 내가 필요한 곳이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소명 같은 게 나온 것 같다"며 "아이들이 말이나 행동이 어려워 눈빛만으로 표현하지만, 그 속에서 나를 기다렸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즐거운 줄다리기


[손영미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손 원장은 뇌병변 유치원에서 8년간 일한 후 직접 특수교육원과 사회복지법인을 차례로 설립해 운영했다.

이때는 뇌병변뿐만 아니라 자폐증,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등의 아이들까지 돌봤다.

손 원장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가정과 사회에 잘 어울리며 지낼 수 있을까 늘 고민했다.

아이들과 등산, 제주도 여행도 같이 했다.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교육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시도한 것이다.

아이들과 보내는 명절


[손영미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손 원장은 한때 한 달에 한 번씩 팔공산 갓바위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던 일화도 얘기했다.

일종의 보상 개념으로 등산로 중간에 있는 매점에서 라면을 늘 사주니 아이들과의 등산이 점점 원활해졌다고 한다.

그는 "하루는 어떤 학부모가 전화하더니 선생님 덕분에 처음으로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등산을 다녀왔다며 고마워했다"며 "이런 순간이 나에게는 행복이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마스크 포장 작업(3월)


[촬영 황수빈]

손 원장의 사업장은 2010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장애인 직업 재활시설 근로 사업장으로 선정됐다.

장애인들이 성인이 되면 오갈 곳이 없어 집에만 있어야 하는 현실을 보고는 그들을 위해 사업장을 만들 결심을 했다고 한다.

손 원장이 운영하는 사업장은 직원 인건비 등만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로부터 지원받는다.

장애인들에게 줘야 하는 급여는 사업을 통해서 얻는 순수익으로 준다. 현재 제과제빵, 마스크 등 5개 사업을 하고 있다.

중증 장애인들을 데리고 하는 사업이다 보니 생산성이 떨어져 일반 업체들과의 경쟁이 녹록지 않다.

특히 최근 마스크 착용이 전면 해제되면서 마스크 판매 수익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재고만 250만장 가까이 쌓여 있어 마스크 공장 자체를 멈춘 상황이다.

손 원장은 사업장을 운영한 이후 불면증에 시달린 지 5년이 다 돼간다고 한다. 매일 2∼3시간씩 겨우 잠에 들지만 그는 사업장 생각뿐이다.

그는 "현재의 장애인 사업장에서 장애인 보호 작업장으로 내려가면 근로기준법에서 자유롭기에 운영하기는 원활할 수 있다"며 "하지만 그럴 생각이 현재는 없고 오로지 어떻게 하면 장애인들을 위해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그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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