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aily

결국 닫혀버린 노사정 대화의 문…노동 개혁 악영향 받나
기사 작성일 : 2023-06-07 17:00:24
정권심판 외치는 한국노총


(광양= 조남수 기자 = 7일 오후 전남 광양시 금호동 희망1길에서 한국노총 긴급 투쟁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광양·서울= 김승욱 홍준석 기자 = 한국노총이 7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 전면 중단을 선언하면서 노정 관계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노사정위원회 시절부터 포함해 경사노위에 25년째 참여하지 않고 있는 민주노총과 달리 한국노총은 사실상 노동계를 대표해 경사노위에 참여해왔는데, 최근 금속노련 간부에 대한 경찰의 강경 진압을 계기로 한국노총이 전격적으로 '참여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는 '노동 개혁'을 놓고 노동계와 정부 사이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국노총마저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서 빠지면서 대화와 타협이 전제돼야 할 노동 개혁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

특히 윤 정부 출범 1년이 지나고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편, 노조회계 투명성 강화 등의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노사정 대화가 절실한 상황에서 '대화 중단'이라는 암초를 만나면서 개혁의 동력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노총은 이날 한국노총 전남 광양 지역지부 회의실에서 제100차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대화 전면 중단을 결정했다.

당초 '탈퇴' 또는 '전면 중단' 중 하나로 결론 날 것으로 예상됐는데, 둘 중 그나마 수위가 낮은 '전면 중단'으로 확정됐다. 탈퇴 여부는 김동명 위원장 등 집행부에 위임했으나, 탈퇴가 당장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한국노총은 대(對)정부 투쟁에 전 조직이 나서기로 결의했다.

한국노총의 거센 반발의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달 31일 발생한 한국노총 금속노련 간부에 대한 경찰의 강경 진압이다.

이날 중앙집행위원회가 열린 광양은 포스코 광양제철소 하청업체 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망루 농성을 벌이던 한국노총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이 지난달 31일 체포된 지역이다. 한국노총은 경찰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회의 장소를 광양으로 정했다.

금속노련은 한국노총 산하 최대 산별 조직이다.

앞서 근로시간 제도·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 개혁으로 국내 제1노총인 한국노총과 정부 사이 감정의 골이 깊어지다가 정부가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추진하면서 대립이 첨예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 산별 조직의 위원장(김만재)과 사무처장(김준영)의 잇따른 체포로 갈등이 폭발했다. 당초 지난 1일로 예정됐던 윤석열 정부 첫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는 체포 소식에 하루 전 무산됐다.

민주노총이 1999년부터 경사노위에 불참하는 가운데 한국노총까지 사회적 대화 '전면 중단'을 선언하면서 안 그래도 지지부진한 노동 개혁은 큰 장벽을 마주하게 됐다.

노동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루려면 노동계 지지는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전면전은 되도록 피해야 하는데, 양대 노총 모두가 정부에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당장 경사노위는 한국노총의 불참 선언으로 사실상 식물위원회로 전락하게 됐다.

경사노위는 이날 입장문에서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더 나은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를 구축해 미래세대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사회적 대화"라고 유감을 표시하면서 "한국노총 입장을 존중하지만, 산적한 노동 개혁과제 해결을 위해 대화에 다시 나서주길 희망한다"라고 밝혔다.

광양에서 열린 한국노총 긴급 중앙집행위원회


(광양= 조남수 기자 = 7일 오후 전남 광양시 중동 한국노총 전남 광양지역지부 회의실에서 한국노총 김동명 위원장과 참석 위원들이 한국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불참·탈퇴 여부를 논의하는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있다.

경사노위는 1998년 1월 노사정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인이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극복과 노사 관계 개혁을 위한 노사정 협의체 구성을 요청해 만들어졌다.

한국노총은 노사정위 시절 몇차례 탈퇴와 복귀를 반복했지만, 2018년 11월 노사정위가 경사노위로 재편된 뒤에는 사회적 대화 테이블을 떠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대화 중단에 아쉬움을 나타내면서 대화 창구를 다시 열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태 해결에 직접 나서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이날 통화에서 "이제 적극적인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 개혁의 쟁점을 좁히고 개혁의 공감대를 만들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인데 장애물이 생겨서 안타깝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노조가 언제까지 치외법권 지역에 있을 순 없고, 일반적 노동 개혁이나 노사 법치주의에 강력히 반대할 명분도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강경 진압이라는 우발적 사건·사고를 노동계가 투쟁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다시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집중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며 "결국 대통령이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권혁 부산대 교수는 "유럽 선진국은 200여년의 오랜 세월을 거쳐오며 노사정 간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이뤘기 때문에 노사정 간 신뢰가 유의미하게 작동한다"며 "우리는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신뢰를 쌓는 데 소홀했다"고 설명했다.

김기선 충남대 교수는 "노사정이 큰 이견 없이 공감할 수 있는 부드러운 이슈에서 사회적 대화의 돌파구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국노총이 '탈퇴'가 아닌 '전면 중단'으로 결정한 것은 사회적 대화 재개의 여지를 남겨놓은 것으로 해석한다.

여당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한국노총 120만 조합원의 표심을 의식해 모종의 화해 제스처를 취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펄럭이는 한국노총 깃발


(광양= 조남수 기자 = 7일 오후 전남 광양시 금호동 희망1길에서 열린 한국노총 긴급 투쟁결의대회에서 김동명 위원장이 한국노총 깃발을 흔들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