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편집자 주 = 2010년대 중반 지역소멸론이 제기된 당시 79개이던 '소멸 위험' 지역은 올해 118곳으로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을 넘습니다. 이제 그 그림자는 대도시까지 드리우고 있습니다. 모두가 암울한 현실만을 얘기하는 이때 온 힘으로 저출산과 초고령화에 맞서는 지자체들이 있습니다. 지자체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인구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그곳, '지방소멸에 맞서는' 그곳들이 있습니다. 는 그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해 매주 1편씩 기획기사를 송고합니다.]
부산 워케이션 거점센터 내 직장인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부산= 박성제 기자 = "일상에서 벗어난 공간에서 일을 하니 스트레스가 절로 해소되네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보다 오히려 업무 능률이 올라가는 것 같아요."
지난달 부산 동구에 마련된 워케이션 거점센터를 찾은 30대 김모 씨는 통유리창 너머 부산 산복도로 전경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의 한 IT 기업에 근무하는 그는 "매일 하는 업무를 부산에서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막상 워케이션으로 근무해보니 집중이 잘 돼서 놀랐다"고 말했다.
김씨가 체험하는 '워케이션'(worcation)은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합쳐 만든 합성어다.
산과 해변 등 휴가지에서 머물며 일과시간에는 업무를 하고, 퇴근 후와 주말에는 휴식을 즐기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부산 워케이션 거점센터
[촬영 박성제]
5박 6일 동안 그는 눈부신 부산 앞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근무하다가, 오후 6시 퇴근을 하면 타지에서 온 관광객으로 변신했다.
부산의 현지 문화를 경험하고자 인근에 있는 영도를 찾아 골목과 항구에 깃든 감성을 느꼈다. 해운대에서는 푸른 바다와 도시의 낭만을 만끽했다.
그는 이번 워케이션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친구 추천으로 처음 시작한 워케이션인데, 이제는 제가 직장 동료를 데리고 부산에 오고 싶네요."
부산 워케이션의 낭만…요트 타는 직장인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 늙어버린 제2의 도시, 대안으로 떠오른 워케이션
'노인과 바다'
지속적인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부산이 얻은 오명이다.
부산은 원도심인 동·중·서·영도구를 중심으로 청년층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곳곳이 인구감소지역 대열에 들어서고 있다.
'제2 도시'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국내 100대 기업 중 부산 소재 기업은 하나도 없다. 이 때문에 일자리를 찾아 부산을 떠나는 청년층 유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부산시와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에 인구소멸 문제는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이 지난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론된 것이 바로 워케이션이다.
부산 워케이션 거점센터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인구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편성하자 부산시와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는 워케이션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워케이션으로 부산에 온 '생활인구'가 이곳에서 경제활동을 하면 인구 감소를 방지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취지다.
관광, 휴양, 업무 등을 위해 머무는 인구를 일컫는 생활인구는 일정 기간 이상 해당 지역에 머물면 정주인구와 비슷한 경제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곽규열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매니저는 "현재 워케이션으로 최소 5박 6일 이상 머물러야 숙박비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며 "생활인구 1명이 최소 이 기간만큼 부산에 머물며 소비를 해야 실질적인 경제적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러한 조건을 내건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점센터에 있는 미니 바
[촬영 박성제]
워케이션을 추진하겠다고 결정했지만, 막상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제주나 강원 등 휴양지로 유명한 지역이 워케이션 분야에서 일찌감치 앞서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발주자로서 차별화가 필요했다.
이에 관광을 중심으로 워케이션을 진행하는 다른 지자체와 달리, 부산시는 '일하기 편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먼저 부산의 관문인 부산역 옆 아스티호텔에 거점센터를 마련해 교통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호텔 꼭대기층에 자리 잡아 부산 도심과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센터는 업무 효율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공간을 조성했다.
708㎡ 규모 거점센터는 업무공간 50석, 회의실 2실, 폰 부스 4실, 이벤트 라운지, 미니 바 등으로 이뤄졌다.
부산 워케이션 거점센터 폰부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업무공간은 '몰입형' 1인석과 협업·교류를 위한 '회의형' 좌석으로 구분했다.
방음시설을 갖춘 회의실은 전체 벽면을 화이트보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보안을 중요시하는 클라우드 기업 등을 위해 독립된 인터넷망도 갖췄다.
거점센터 이외에도 인구소멸지역 중 하나인 영도구에 '위성센터'를 뒀다. 필요할 경우에는 자유롭게 이동해 새로운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다.
다양한 네트워킹 행사도 진행해 체류자들이 비즈니스 교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손태욱 부산시 관광진흥과장은 "전국 기업 대상 조사에서 워케이션에 필요한 1순위로 '업무공간 편의'가 꼽힌 점을 고려해 차별성 있는 업무공간을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체류자 간 교류나 부산 기업인과의 교류는 여러 스타트업 등과의 협업 기회를 늘리고, 부산의 숨은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 일조한다"고 덧붙였다.
영도구에 있는 부산 워케이션 위성센터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 '부산만의 강점'…비즈니스 인프라 갖추고, 인적 교류 활발해
"'워크'와 '버케이션'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부산에서의 워케이션이야말로 직장인에게는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채용 플랫폼 베러웍스 임태은 대표는 부산을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열렬히 놀 수 있는 공간'으로 표현했다.
여러 지역에서 워케이션을 경험했다는 그는 "워케이션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어쨌든 일을 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낮에는 오롯이 업무에 집중하고 싶어한다"며 "일부 지역은 관광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돼 난감한 적이 있었는데, 부산은 다르다"고 만족해했다.
제2의 도시로서 기본적인 인프라가 잘 갖춰져 업무 편의성이 높다는 것은 워케이션 거점으로서 부산만이 가진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지역은 워케이션이 도심과 떨어진 지역에서 진행되다 보니 인쇄소, 정비소 등 필요시설을 갑작스럽게 이용해야 할 경우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임 대표는 "재택근무가 많은 업종 중 하나가 디자이너인데, 갑자기 협력업체를 찾아야 하는 경우를 꽤 목격했다"며 "멀리 떨어진 휴양지에서는 차를 빌려서 시내로 나가야 하는데, 부산은 걸어가거나 대중교통으로 쉽게 갈 수 있어 장점이 크다"고 설명했다.
부산 워케이션 센터에서 '더블유 데이' 즐기는 직장인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워케이션 참여자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부산 워케이션 센터에서는 주기적으로 네트워킹 행사인 '더블유 데이'를 열어 체류자들이 비즈니스 교류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 행사 날에는 워케이션에 온 사람들이 서로 업계 정보를 공유하며 대화를 나누고, 부산 명소를 함께 관광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수입품 전자상거래를 하는 우상현(36) 대표는 "혼자서 일을 하다 보면 궁금증이 생겨도 해소하기 어려운데, 이곳에서 여러 사람과 교류하다 보니 도움받을 때가 많다"며 "다양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어진다"고 했다.
그는 "서로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공유하다 보면 나에게 부족한 점을 개선해봐야겠다는 동기 부여도 된다"고 덧붙였다.
다른 워케이션 참가자 역시 "네트워킹 행사에 참여하면서 업무에 필요한 영감도 얻을 수 있다는 점에 부산의 강점이 있다"며 "이 행사가 아니었다면 유명 외국계 회사 직원을 언제 만나서 대화를 나눠볼 수 있겠느냐"고 흡족해했다.
이어 "회사에서 매일 똑같은 사람들과 만나며 대화를 나눌 때와는 차원이 다른 신선함과 신세계를 맛보게 된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부산 워케이션 센터에서 워크샵 하는 직원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 기업 유치하고, 인구 유입…"한국 넘어 '글로벌 워케이션 도시' 될 것"
부산 워케이션의 성과는 수치로 나타난다.
올해 2월 개소한 부산 워케이션 거점센터를 이용한 직장인은 1천200여명에 달한다.
한 달에 200명가량의 직장인이 부산을 워케이션 장소로 선택한 것이다.
더구나 1천여개의 대·중소기업과 2천여명 직장인이 이용 희망자로 등록했다.
일하기 좋은 부산의 매력을 경험케 하는 워케이션은 기업 유치와 인구 유입으로 이어졌다.
서울에 본사를 둔 한 투자사는 이곳에 워케이션을 온 뒤 부산 소재 스타트업, 중소기업 등과의 연계 가능성을 엿보고 부산에 지사를 내기로 결정했다.
이후 1년 동안 워케이션 센터를 근무지처럼 이용할 수 있었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와 협약을 맺어 직원들이 이곳에서 업무를 보도록 한 것.
부산 워케이션 거점센터
[촬영 박성제]
워케이션을 하다가 부산에 매력을 느낀 생활인구가 '정주인구'가 된 사례도 있다.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는 이모 씨는 여러 차례 워케이션 센터를 이용하다가 부산으로 아예 이사를 왔다.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 특성상 거주지를 자유롭게 옮길 수 있었는데, 워케이션 경험을 통해 부산의 매력에 푹 빠져들어 정착하게 된 것이다.
곽규열 매니저는 "현장에서 접하다 보면 기업과 개인 모두 워케이션을 계기로 여태껏 몰랐던 부산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좋다고 입을 모은다"고 전했다.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부산 워케이션 홍보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홈페이지 갈무리. 재판매 및 DB금지]
이제 부산 워케이션은 한국을 뛰어넘어 세계인을 맞이할 준비에 나선다.
내국인을 상대로는 워케이션이 어느 정도 알려졌다는 판단 아래 외국인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첫 타깃은 원격근무 비율이 높고 우리나라와 문화적으로도 유사한 점이 많은 일본이다.
부산시와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9일 니콘, 소니 등 일본 유명 회사의 기업인을 초대해 거점센터 등 부산 워케이션을 소개하는 투어를 진행했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이 투어는 글로벌 워케이션 관광객 유치를 위한 첫 시도"라며 "이를 계기로 일본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가 워케이션에 참여해 부산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워케이션은 개인의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을 넘어 하나의 신사업으로 활용될 수 있는 '도시 브랜드 전략'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워케이션 선도도시'로서 부산이 가진 강점과 차별화한 매력을 다양한 방법으로 국내외에 알려 글로벌 워케이션 수요를 선점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부산 워케이션 거점센터 설명서
[촬영 박성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