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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70년, 피란수도 부산] (26)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기사 작성일 : 2023-09-23 10:00:32
장기려 박사 (맨 왼쪽)


[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부산= 차근호 기자 = 6·25전쟁 때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을 위해 교회 창고에 천막 병원을 만들어 의술을 베푼 의사가 있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기려 박사다.

23일 부산시에 따르면 장 박사는 1951년 6월 20일 부산 영도구에 있는 한 교회 창구를 빌려 복음병원을 세우고 피란민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병원이라고 하지만 빈 땅에 천막 3개를 친 것에 불과하던 이곳에서 장 박사는 유엔에서 원조받은 약으로 환자를 보살피기 시작했다.

무료 진료 소식에 하루 200여명이 몰릴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었지만, 장 박사는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환자들을 모두 돌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병원은 지금의 '고신대병원'의 모태가 됐다.

장 박사는 피란민을 돌보고 의술을 베풀었지만, 그 역시 피란민이었다.

1911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난 장 박사는 평양연합기독병원 외과과장, 평양도립병원 원장, 김일성대 외과과장을 역임하며 주로 평양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그는 중공군이 남하할 때인 1950년 12월 3일 차남 정가용만을 데리고 국군 수송 버스를 올라 피란 생활을 하게 됐다.

장 박사가 베푼 무료 의술과 관련해서는 일화가 수도 없이 전해져 온다.

환자가 치료받고도 돈이 없어 눈치를 보자 장 박사는 병원 뒷문을 열어주며 '집에 돌아가서 푹 쉬고, 돈이 없어도 괜찮으니 며칠 뒤 꼭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장기려 박사


[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영양실조에 걸린 환자가 '돈이 없어 먹을 걸 구할 수가 없다'고 토로하자 환자에게 닭 두 마리 값을 내어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걸인이 '돈을 달라'고 하자 그 자리에서 월급으로 받은 수표를 통째로 준 적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로지 환자만 생각한 의사라고 해서 '바보 의사'라는 별명도 그때 붙었다.

장기려는 1968년 동료 의사들과 함께 민영 의료보험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해 운영하기도 했다.

장기려는 1943년 국내 최초로 간암 환자의 암 덩어리를 떼어내는 수술에 성공했고, 1959년에는 간암 환자의 간 대량 절제술에도 성공하는 등 의술로도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

장기려는 이런 공적을 인정받아 1976년 국민훈장 동백장, 1979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1995년 인도주의 실천 의사상 등 무수히 많은 상을 받았다.

부산시 관계자는 "평생에 걸쳐 봉사와 나눔을 실천한 분으로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을 더 배려하는 참된 의사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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