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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차례상을 두 번씩이나? 제주의 신을 위한 '문전제'
기사 작성일 : 2023-09-29 08:01:14

(제주= 백나용 기자 = "문전제(門前祭) 지내시나요?"

문전상


[촬영 백나용]

몇 년 전 제주지역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신랑과 문전제를 놓고 이견이 있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제주로 이사와 살고 있다. 원래 고향이 제주인 신랑이 며칠 전부터 문전제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며 "큰 집에서 명절을 지내 따로 차례상도 안 차리는 데 문전제를 해야 하느냐. 문전제가 정확히 무엇이냐"고 궁금해 했다.

제주도에서는 1만8천에 이르는 수많은 토속신이 있어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는 믿음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문전신은 가택신 중 최상위 신이다.

집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사악한 기운을 막아주는 존재다.

집안을 드나드는 입구에 자리 잡고, 조상신이 오가는 길목을 관장하기에 옛 제주인은 조상을 모셔 제를 올리기에 앞서 문전신을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전제는 따지고 보면 유교식 제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무속적 풍속과 유교적 제례 방식이 결합해 생긴 제주만의 풍습이다.

문전제를 지낼 때는 현관문을 열어 놓고 하며, 제상 앞을 오가거나 문 앞 마당을 오가는 행위는 금기시된다.

명절과 제사 때 본제를 지내기에 앞서 이뤄지는 문전제는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아래와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먼저 본상 옆에 문전상을 차린다. 본상에 올리는 밥과 국, 과일 등 제물을 종류별로 그릇에 약식으로 올리면 된다.

본제 한 시간 전 문전상과 향로를 거실로 들고 나가 대문 쪽으로 향하도록 현관 앞에 놓는다.

문전제


[촬영 백나용]

제주(祭主)가 향을 피우고 잔에 술을 부어 향 위로 오른쪽으로 3번 돌리고 문전상 위에 올린다.

본제와 달리 문전제는 제주 혼자 또는 제주와 집사 각 한 명만 두고 지내며 술도 한 번만 올린다.

이어 숟가락을 국에 적셔 밥에 꽂고, 젓가락은 나물 위에 올려놓는다.

집안에 따라 국을 제외하고 밥만 올리기도 한다.

술잔에 모든 음식을 조금씩 떼서 넣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원위치에 내려놓는다.

제주는 이 과정에서 2번씩 3차례 절을 한다.

문전제는 집안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명절 차례상을 차리지 않는 집도 문전제를 지내는 경우가 많다.

문전제가 끝나면 문전상에 올린 제물은 그대로 부엌으로 옮기기도 하고, 모두 조금씩 떼어 내 지붕이나 올레에 던지는 '고수레'를 하기도 한다.

고수레는 조상을 따라온 벗이나 잡귀를 대접하기 위함이다.

이는 문전신이 문 앞을 지키고 있어 조상만 집 안으로 들어와 차려진 제사상을 먹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생긴 풍습이다.

이때 제사상에 올린 제물 중 빠뜨린 것 없이 고수레했는지 잘 확인한다.

잡귀들이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상에게 제사상에 올려진 제물 종류를 물어보고, 혹시라도 자신들에게 바치지 빼먹은 제물이 있으면 조상을 타박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유교적 제례의식이 갈수록 간소해지고 있지만 제주도의 문전제는 명절뿐 아니라 제사, 잔치, 이사 등 집안 큰 일이 있을 때 빠지지 않는 풍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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