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 = TV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는 을지재단이 사실상 박준영 회장 일가의 '족벌경영' 체제 속에 사익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을지재단은 산하에 병원, 대학 등 여러 법인을 두고 있지만, 박준영 회장과 아내인 홍성희 을지대 총장이 요직을 주고받으면서 사실상 함께 경영하는 체제다.
비영리법인으로 각종 세제 혜택을 받는 을지재단의 '족벌경영' 폐해는 여러 사례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부부가 비상근이사이면서도 재단에서 매달 1천만원씩 '셀프급여'를 받은 것, 박 회장이 '재단 소속 병원'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3천회 이상 처방받은 것, 개인 소유의 관계회사를 만들어 병원과 거래에서 생기는 수익을 챙긴 것 등등.
을지재단은 TV의 최대주주 지위를 노리면서 그 운영 방침으로 '소유와 경영의 분리', '공정성 및 공익성 실현'을 내세웠다.
하지만 박 회장 부부의 이익을 위해 철저하게 재단을 '사유화'한 행태가 여러 사례를 통해 드러난 상황에서, 이들의 공영방송 지배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을지재단
◇ '비상근'인데…박-홍 부부, 매달 1천만원씩 '셀프 급여'
을지재단과 그 산하 을지병원, 을지학원 등은 박준영-홍성희 부부가 사실상 지배하는 체제다.
을지재단의 박준영 회장이 을지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고, 을지병원 이사장은 그 부인인 홍성희 이사장이다. 홍 이사장은 다시 을지대 총장을 맡고 있다.
그런데, 박준영 회장과 홍성희 총장은 학교법인 을지학원에서 부적정하게 급여를 지급받았다가 교육부 감사에서 지적을 받았다.
교육부는 2014년 학교법인 을지학원과 을지대학교에 대한 감사를 벌였는데, 당시 을지학원 이사장이었던 홍 총장은 '비상근'이었음에도 2011년 3월부터 2013년 3월까지 매달 1천670만∼1천870만원씩 총 4억2천715만원의 급여를 받았다.
을지학원은 정관에서 '상근' 이사장과 이사 1인에게만 보수를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다.
을지학원 이사였던 박 회장 역시 '비상근'이었음에도 2013년 8월부터 2014년 10월 감사 시점까지 매달 1천만원씩 14개월간 1억4천만원을 급여로 받았다.
교육부는 을지학원이 이들에게 지급한 총 5억6천715만원을 회수하라고 처분했다.
더구나 이는 2011년 3월부터 감사 시점까지의 회계자료만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부당하게 수령한 급여가 더 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한, 을지학원은 강원도 양양에 교육용시설인 을지인력개발원을 소유하고 있는데, 2006년 이 부지에 '홍성희 총장 개인 명의'의 미술관을 건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회 의결을 거치거나 교육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교육용 시설을 개인 소유 미술관이 점유·사용하고 있다면 그 임대료를 학교법인에 응당 내야 한다는 것이 당시 교육부 지적이었다.
이처럼 학교법인이 10명의 이사 가운데 유독 박-홍 부부에게만 억대 급여를 지급한 것, 교육용시설에 총장 개인 명의 미술관을 지은 것 등은 결국 을지재단의 '족벌경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박준영 을지재단 이사장
[ 자료사진]
◇ '회장'이기에 가능했다…'을지병원 의사'가 마약성 진통제 3천회 처방
족벌경영의 폐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마약류 투약 문제에 족벌경영 체제가 이용됐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박준영 회장은 '을지재단 산하 을지병원 의사들'로부터 마약성 진통제인 페티딘을 불법 처방받아 투약한 혐의로 2018년 11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을지병원 소속 의사들에게 전화 등으로 연락해 페티딘을 처방해달라고 요구했다. 의사들은 진료 없이 페티딘을 직접 처방해주거나, 병원의 다른 직원 명의로 처방전을 발급해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
이런 식으로 박 회장은 2013년 3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4년 반 동안 무려 3천161차례에 걸쳐 총 79만4천200㎎의 페티딘 처방전을 받았다.
2019년 8월 2심 재판부는 관련법에 처방전을 '발급한 자'에 대한 형벌만 규정돼 있어, '발급받은 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투약 자체는 사실이지만, 법리상 문제로 처벌을 피한 것이다.
하지만 재단 회장이 소속 병원에서 3천회 이상 마약류 처방을 받은 것은 오직 '회장'이라는 직함과 족벌경영 체제 탓에 가능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애초에 일반인이라면 진료 없이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병원의 다른 직원 명의로 대리 처방을 받은 것은 권한 남용을 넘어, 병원과 직원을 '사유재산'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을지재단, 박준영 전 회장 마약 성분 투여 인정…"치료목적"
(대전= 이재림 기자 = 을지재단은 25일 마약 투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박준영 전 회장의 마약 성분 진통제 투여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사진은 을지재단 박준영 전 회장. 2017.12.25 [ 자료사진]
◇ 개인회사 만들어 병원과 거래…수익은 '셀프 배당'
박준영 회장 부부는 매출의 대부분을 을지병원에 의존하는 업체를 만들어 '셀프 배당'을 하며 병원의 수익을 우회적으로 빼돌리기도 했다.
박 회장 부부는 2003년 도매업체와 의료기관 사이에서 의료기기, 치료재료 등을 유통하는 '간납업체'(간접납입업체) 토탈메디칼을 세웠다.
박 회장 부부가 각각 주식의 절반씩을 가진 이 회사의 2013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매출액은 305억4천243만원인데, 대부분인 93.6%인 285억8천560만원이 학교법인 을지대학병원 등 특수관계자와 거래에서 나왔다.
이렇게 얻은 당기순이익 5억9천158만5천원의 대부분인 5억5천만원을 주주인 박 회장 부부에게 배당했다.
재단 산하 병원과 거래하기에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매출과 이익이 절로 발생하는 회사의 주식을 회장 부부가 소유하고, 그 배당을 대부분 챙긴 것이다.
토탈메디칼의 주식은 지난해 '이유인베스트'라는 회사를 통해 을지학원에 매각됐다.
을지학원이 토탈메디칼을 손자회사로 갖게 된 것으로, 간납업체 비리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박 회장 부부 주식을 처분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을지재단 '족벌경영' 폐해 주요 사례
특별취재팀 = TV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는 을지재단이 사실상 박준영 회장 일가의 '가족 경영' 체제 속에 사익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을지재단 홈페이지와 국세청의 공익법인 결산서류 공시 자료 등을 보면 을지재단, 산하 을지병원과 을지학원의 이사진은 동일 인물로 얽혀 있다. 페이스북 tuney.kr/LeYN1 트위터 @yonhap_graphics
◇ 재단 내부서도 "오직 회장 위해 움직인다" 비판
을지재단 내에서도 박 회장의 '재단 사유화'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원을지대병원 노조는 지난해 8월 파업에 돌입하면서 "간호사 5명이 90명의 환자를 보게 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으며, 한 병동의 절반 이상 간호사가 3년차 이하 저연차로 구성돼 숙련인력 부족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인력 부족과 열악한 근무 환경은 '태움'(간호사 집단 내 가혹행위) 등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11월 의정부 을지대병원 소속 신입 간호사가 병원 기숙사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을지대병원 내 의료인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1년 동안 퇴사할 수 없고 다른 병원으로 이직할 수 없다'는 특약 조항 등이 알려지며 거센 비판이 일었다.
직원 인증 후 글을 쓸 수 있는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는 "노동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급여", "타병원에 비해 휴일과 인력이 부족", "대학병원 간판이 부끄러울 정도 급여" 등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비판이 많다.
이와 함께 "회장의 기분과 방침에 따라 각종 정책이 정해지지만, 비전과 혜안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오직 회장을 위해, 회장에 의해 움직인다" 등 공익법인의 사유화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을지의료원에서 근무하는 한 의사는 "교수들 사이에서 별명이 '스크루지'일 정도로 돈을 밝히면서도 쓰지는 않는다"고 비판했다.
을지재단은 TV의 최대주주 지위를 노리면서 그 사업계획서에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 '공정성 및 공익성 실현'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처럼 재단을 '사유화'하고 '족벌경영' 체제를 확립한 박 회장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공정성과 공익성을 실현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보도전문채널의 소유자가 완전히 바뀌어 공적 성격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준다는 것은 부동산으로 이야기하면 '농지'를 '대지'로 바꾸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한국언론정보학회장 출신인 그는 "보도채널을 YTN과 에 줬을 때는 공공성을 상당히 의식했다는 것인데, 다시 최대 주주를 사기업으로 바꾸는 것은 이러한 정신을 깡그리 무시하는 셈"이라며 "그런 점에서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2022년 8월 24일 노원을지대병원노조 파업전야제 [사진제공 보건의료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