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전지혜 기자 = "제게 이용사 일은 천직이고, 봉사는 숙명 같아요."

40여년간 이발 봉사를 해온 이희영 이용기능장
[촬영 전지혜]
제주시 이도이동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헤어클럽을 운영하는 이희영(61)씨는 경력 50년이 다 돼가는 숙련된 이용사이자 이발 봉사한 지 40년이 넘은 '봉사 베테랑'이다.
이씨가 처음 가위를 잡은 건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무렵이었다.
당시 담임교사가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이씨에게 '낮에 일하고 밤에는 학교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알려줘서 야간 학교에 다니며 낮에는 교내 이발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수업을 들었다.
일찍 일을 시작해 어른들을 상대하다 보니 또래보다 철도 일찍 들었다.
그래서일까. 이씨가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한 건 20살 때로, 갓 성인이 돼 한창 놀러 다니고 싶어 할 나이에 주위 어려운 이웃을 살피기 시작했다.
첫 봉사는 집 근처 보육원에서 시작했다.
한번 갈 때마다 그곳에 있는 아이들 70여명을 모두 이발해줘야 해서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을 법한데, 이씨는 "몸이 힘들었던 기억은 전혀 없고 즐겁게 했다. 다만 아이들에게 미안한 점이 있었다"고 했다.
이용업 특성상 주말이 가장 바쁜 터라 평일에 보육원에 찾아갈 수 있었는데, 아이들이 하교하는 오후 시간대부터 수십명의 머리를 손질하다 보면 밤늦게까지 기다려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씨는 "오후 4∼5시께 시작해 이튿날 오전 2∼3시까지 머리를 잘라줬는데, 아이들이 줄을 서서 꾸벅꾸벅 졸면서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내가 주말에 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육원이 문을 닫을 때까지 13년을 찾아가 아이들의 머리를 만져줬다고 한다.
이씨는 "보육원 원생들로 구성된 5인조 악단이 있었는데 제가 결혼할 때 축하 연주를 해줬다. 최고의 결혼식을 만들어줘서 아이들에게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보육원 외에 제주시의 한 양로원을 찾아 수년간 어르신들을 이발해드리고, 특수학교와도 인연이 닿아 수년간 장애 학생들의 머리를 손질해주기도 했다.
이씨는 "5∼6년 정도 양로원 봉사를 다니다 보니 지난달 대화도 잘 나누며 머리 자른 어르신이 그 다음 달에 가보면 돌아가셔서 안 계시는 그런 일을 계속 겪으며 마음이 아파 힘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희영 이용기능장이 가발 작업하는 모습
[촬영 전지혜]
이렇게 혼자서 봉사활동을 해오던 이씨는 1992년 지인의 부탁으로 제주시 아라종합사회복지관에 이발 봉사를 가게 됐는데, 그때 뜻이 맞는 도내 다른 이용사들과 함께 이발봉사회를 결성했다.
그렇게 봉사회 회원들과 어울려 노인, 영세민 등을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이발 봉사를 다닌 지도 어언 30년이 넘었다.
그는 이발 봉사 외에도 여러 기부처에 정기후원과 기부를 하고, 사회단체의 청소년 선도 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이씨는 이용사 일이 자신에겐 '천직'이고, 자신이 가진 기술로 남을 도울 수 있게 된 것은 '숙명'과도 같다고 말했다.
2009년 제주도 내 최초로 국가기술자격인 이용기능장을 취득한 그는 50년 경력에도 여전히 자신에게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배움과 단련을 쉬지 않고 있다.
이씨는 "이 직업이 기술에 예술이 접목돼있어서 지겨움 없이 해왔다. 기술에는 끝이 없다. 50년을 해왔지만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하는데,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기술을 더욱 단련하게 되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처럼 생업과 봉사활동을 병행하며 바쁘게 살다 보니 가족과는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것이 돌이켜 생각해보니 참 미안하다고 했다. "아내와 자식들이 이해해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오래 활동을 이어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고마움과 미안함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씨는 "저는 이미 봉사활동에 중독된 것 같다. 다녀올 때마다 힘든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왔다는 생각에 살아있음을 느끼고, 이렇게 살아가며 사회의 밀알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앞으로 90세까지는 일도 봉사도 계속 하고 싶은데 하느님, 부처님이 도와주셨으면 한다"며 밝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