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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주의 세계 챔피언' 독일 행정절차 줄인다지만
기사 작성일 : 2024-03-15 01:00:57

관료주의의 상징 '서류철'


[EPA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베를린= 김계연 특파원 = 독일 사회의 고질병이자 경기침체의 배경으로까지 지목되는 관료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일 정부가 규제완화에 착수했다.

14일(현지시간) 독일 정부에 따르면 전날 각료회의에서 제4차 관료주의 철폐 법안이 의결됐다.

법안은 상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해 각종 행정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이다. 영수증 사본과 급여명세서 등 회계서류 보존기간을 10년에서 8년으로 단축하고 현재 1년간 보관해야 하는 숙박업소 손님 명부는 내국인에 한해 폐지한다. 항공편 체크인 때 디지털 여권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 법률은 의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독일 정부는 새 법률이 시행되면 연간 9억4천400만유로(약 1조3천600억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했다.

독일은 복잡한 행정절차로 유럽에서도 악명이 높다. 풍력발전 터빈 하나를 세우는 데 작성해야 할 서류가 1만9천쪽이라는 말도 있다. 서비스업계 종사자는 의미도 잘 모르는 관료주의적 의무를 이행하는 데 매주 14시간을 쓴다고 한델스블라트는 지적했다.

최근에는 독일식 관료주의가 경기침체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크리스티안 린트너 재무장관은 관료주의 때문에 독일이 기업 입지로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 정부는 관료주의로 낭비되는 비용이 연간 650억유로(약 9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마르코 부슈만 법무장관은 이번 법안에 대해 "관료주의 철폐는 비용이 들지 않는 경기부양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독일 정부의 관료주의 철폐 노력이 처음은 아니다. 법률 개정안 패키지 형식인 이른바 관료주의철폐법은 2019년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그러나 관료주의를 철폐한다고 보기에는 의무로 남아있는 서류작업이 여전히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 기업의 보고·신청·통지 의무는 2014년 1만592건에서 올해 1만2천265건으로 10년 새 오히려 15.8% 늘었다.

독일 상공회의소는 의회의 법안 검토 과정에서 서류작업 의무를 더 많이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슈만 장관은 "독일은 관료주의 세계 챔피언이기 때문에 재계 주장이 맞는다"면서도 "몇 년 동안 쌓인 뱃살처럼 버튼 한 번 눌러서 하룻밤에 없앨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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