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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증원규모'…"2천명 백지화해야" vs "27년만의 증원인데"
기사 작성일 : 2024-03-25 17:00:30

사직서 작성하는 교수


윤동진 기자 = 25일 오전 서울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열린 ‘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수 총회’에 참석한 교수가 사직서를 작성하고 있다. 2024.3.25

김잔디 기자 =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무더기 면허정지'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기 직전 극적으로 대화의 가능성이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유연한 처리 방안" 주문으로 일단 정부와 의사들이 대화 테이블에 앉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후 협상 과정은 험난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의대 교수들은 정부의 '2천명 의대 증원'을 백지화할 것을 요구하면서 25일 집단 사직을 강행했다. 증원 철회가 없으면 대화도 없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정부는 이에 맞서 의대 증원이 '27년 만에'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는 점도 내세웠다.

양측이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사태의 장기화가 양측 모두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는 점에서 '극적 타협'의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이르다고 할 수 있다.


취재진 앞에 선 의대 교수들


윤동진 기자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들이 2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기자회견을 마친 후 요구안이 든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2024.3.25

◇ "2천명 증원 철회 없으면 대화 없어"…사직 강행한 교수들

최근 의정(醫政) 갈등에서 전면에 나선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전날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의 비공개 간담회를 통해 그 발언권이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간담회 후 한 위원장이 이탈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처분을 유연하게 해달라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요청했고, 윤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날 전의교협의 기자회견은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는데, 기자회견의 핵심은 한마디로 '2천명 증원 백지화'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전의교협은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배정의 철회가 없는 한 위기는 해결될 수 없으며, 정부의 철회 의사가 있다면 국민들 앞에서 모든 현안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즉, 정부가 의대 증원을 먼저 철회해야만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뜻이다.

이들은 "의대 입학정원 증원은 의대 교육의 파탄을 넘어 의료체계를 붕괴시킬 게 자명하다"며 "의대 입학정원 문제는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전의교협과 함께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2천명 증원을 철회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의 '엄포'는 단순히 엄포로 끝나지 않았다. 이날 전국 의대 교수들이 무더기로 사표를 제출했고, 나아가 근로시간 단축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2천명 증원 백지화를 관철하기 위한 '무언의 압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전공의 공석'


(대구= 윤관식 기자 = 전공의 집단이탈로 의료공백이 장기화 하고 있는 25일 대구 한 대학병원 외래 진료 대기실 TV에 전공의 공석으로 진료가 지연된다는 안내문이 송출되고 있다. 2024.3.25

◇ "27년만의 증원 기반으로 의료개혁 완수"…물러서지 않는 정부

정부는 의료계와 대화하겠다면서도 증원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전의교협이 정부와의 건설적인 대화에 나설 준비가 되어있다고 한 것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힌다"면서도 "27년 만에 이뤄진 의대 정원 확대를 기반으로 의료개혁 과제를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27년 만에'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의대 증원의 당위성과 그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내세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대 의대가 신설되며 정원이 늘어난 1998년 이후로 역대 정권은 번번이 의대 증원에 실패해왔다. 오히려 2006년 351명을 줄인 뒤 19년간 동결된 상태다.

정부는 2018년과 2020년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증원을 추진했으나, 전공의들의 무기한 업무중단 등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결국 '백기'를 들어야 했다.

결국, 이번에도 의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의대 증원을 철회한다면 '27년 만의' 증원도 무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조 장관은 "끝까지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이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의사들의 '의대 증원 철회' 주장이 국민의 뜻에 반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할 수 있다.


응급진료센터로 이송되는 환자


신현우 기자

◇ '극적 타협' 가능성 열려 있어…관건은 '전공의 동의' 여부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정부와 의사들 모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극적 타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로서는 국민들의 의대 증원과 의료개혁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장기화는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의대 증원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함께 올랐지만, 최근 지지율 하락에서 알 수 있듯 사태의 장기화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도 조금씩 쌓여가고 있다.

4월 총선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고, 총선 이후 정국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의사들로서는 환자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집단 이기주의'에 매몰됐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나듯 국민적 지지를 얻는 의대 증원과 의료개혁을 계속 외면하고 이탈 전공의만 지지할 경우 '의사 기득권'에 대한 비난 여론은 갈수록 커질 수 있다.

양측도 이를 의식한 듯 극적 타협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전향적인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백지화가 '0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밝혀 증원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조 장관도 이날 브리핑에서 '2천명'이라는 숫자를 거론하지 않았다. '2천명 증원'을 거듭 강조해 오던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윤 대통령도 이날 "의료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와 더욱 긴밀히 소통해달라"고 내각에 지시해 전날에 이어 유화적인 제스처를 잇달아 내보였다.

양측의 태도가 이처럼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보이면서 '2천명'과 '0명'의 사이 어디쯤에서 양측이 극적인 타협을 이룰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내년도 의대 입학정원이 5월 하순 공고되는 '2025학년도 대입전형 수시모집요강'에 최종적으로 반영되는 만큼, 아직 두 달가량의 시간이 남아 있다는 점도 극적 타협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다만 양측의 타협안에 대한 전공의들의 동의 여부는 별개의 문제이다.

사직한 인턴 류옥하다 씨는 "교수들은 교육 중심 수련환경 구성 등 전공의와 각을 세우는 분들로, 전공의나 의료계를 대변하지 못하는 이해 당사자들"이라며 "정부가 교수들과 대화하겠다는 건, 노조가 사직했는데 사측 대표이사를 만난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고 각을 세웠다.

정부와 의료계가 타협안을 만들더라도 전공의들이 이를 받아들일지 여부는 다른 문제이며, 전공의의 타협안 수용만이 사태의 최종 타결을 불러올 것이라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수련병원 교수는 "양쪽 모두 물러서지 않고 있어 증원 규모가 조율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라며 "전공의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협상에 얼마나 참여할지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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