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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캠퍼스 지금은 복지관 커플"…어르신들 시 위트 넘치네
기사 작성일 : 2024-04-03 08:00:31


[문학세계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용래 기자 = "아내의 닳은 손등을 / 오긋이 쥐고 걸었다 / 옛날엔 캠퍼스 커플 / 지금은 복지관 커플"

부부간의 오래된 애틋한 정과 노년의 삶을 긍정하는 유머러스한 태도가 자연스럽게 담긴 이 시의 제목은 '동행'(성백광 지음)이다.

어느덧 세월은 흐르고 흘러 인생의 뒤안길을 맞았지만 살아있는 것 자체가 임을 기쁘게 노래한 시도 있다.

"죽음의 길은 멀고도 가깝다 / 어머니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 나를 돌아본다 / 아! 살아있다는 것이 봄날"(김행선 시 '봄날')

이 시들은 한국시인협회와 대한노인회가 올해 공동 주최한 제1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에서 각각 대상과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들이다.

시인협회와 대한노인회는 공모전의 수상 작품집 '살아 있다는 것이 봄날'을 최근 펴냈다.

시심 가득한 노인들이 노래한 시들에는 인생을 오래 산 사람만이 갖게 되는 여유와 품격, 유머가 잔잔하게 녹아 있다.

"할배가 안경을 찾아서 / 여기저기 돌고 있는데 / 네 살 손녀가 찾아 주었다 / 할배 손에 있다고"(천봉근 시 '잃은 안경')

"아이스 아메리카노 / 따뜻한 거 한잔"(박태철 시 '커피 주문')

노화라는 현상을 재치로 승화시켜 안타까움과 웃음을 동시에 주는 시들도 있다.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아리송한 치매약"(손동호 시 '아리송해')

"근육통으로 병원에 갔다 / 퇴행성이라 약이 없단다 / 관절염으로 병원에 갔다 / 퇴행성이라 약이 없단다 / 마음이 아프다 / 퇴행성이라 약이 없겠지"(문혜영 시 '퇴행성')

수상작은 아니지만 98세의 최고령 노인이 응모한 시에는 더 이상 나이를 먹고 싶지 않다는 절절함이 흐른다.

"세월은 흘러 / 잘도 가는데 / 어느 길을 따라가야 / 나이를 안 먹는가 / 누가 이 늙은이한테 정답 좀 알려 줘 봐요"(원숙이 시 인생 길)

올해 처음 진행한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에는 전국 만 60세 이상 시니어들이 5천800여 편의 작품을 응모하는 열기를 보였다.

예심을 거친 100편의 응모작들을 대상으로 본심을 거쳐 수상자를 선정했다.

주최 측은 "철저한 블라인드 심사를 거쳤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름이 알려진 기성 시인들도 몇 명 응모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기성 시인들은 입상작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다고 한다.

심사위원인 나태주 시인은 수상작들에 대해 "짐짓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비범한 글로 촌철살인이라는 특징이 있다"면서 "바로 이런 글이 좋은 글이요 감동을 주는 글"이라고 총평했다.

수상 작품집에는 본심에 오른 100편의 작품이 실렸다. 인공지능(AI)으로 생성한 이미지를 김우현 작가가 리터칭해 보정한 그림들도 함께 수록됐다.

문학세계사. 성백광 외 지음. 김우현 그림.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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