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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30년전 르완다 대학살 프랑스 책임 거듭 반성
기사 작성일 : 2024-04-05 18:00:58

2021년 5월 르완다 수도 키갈리를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PA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파리= 송진원 특파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프랑스가 동맹국들과 함께 대량 학살을 막을 수 있었지만 그럴 의지가 없었다며 다시 한번 책임을 자인했다.

엘리제궁은 마크롱 대통령이 르완다 대학살 30주기를 맞는 7일(현지시간) 프랑스의 책임을 다시 한번 인정하는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라고 4일 밝혔다.

엘리제궁은 "대통령은 투치족에 대한 완전한 말살 단계가 시작됐을 때 국제 사회가 이를 알아차리고 행동에 나설 방안이 있었지만 서방, 아프리카 동맹국과 함께 대량 학살을 막을 수 있었던 프랑스는 그렇게 할 의지가 없었다는 사실을 되새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어 "대통령은 투치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며 프랑스가 르완다와 그 국민 편에 서 있음을 재확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엘리제궁은 "특히 대통령은 기억해야 할 의무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젊은 세대에게 교육을 통해 관련 지식을 전수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마크롱 대통령이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에게 학살 30주기 추모식에 초대받았으나 스테판 세주르네 외무부 장관과 르완다 출신 정부 각료가 대신 참석하기로 했다.

르완다에서는 1994년 4월 6일 다수 부족인 후투족 출신 대통령이 탄 전용기가 격추돼 숨지자 다음날부터 약 100일간 소수 투치족과 이에 동조하는 후투족 일부를 상대로 무차별적인 학살이 벌어졌다. 당시 희생된 사람만 80만명에 달한다.

이후 르완다는 당시 현지에 주둔했던 프랑스군이 학살 가담자들에게 무기를 지원하고 그들의 도피를 도와 일부가 프랑스에 정착할 수 있었다며 프랑스 책임론을 꾸준히 주장했다. 르완다는 과거 벨기에 식민지였으나 1970년대부터 같은 언어를 쓰는 프랑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프랑스는 자국의 학살 방조론이나 책임론을 계속 부인하다 마크롱 대통령 취임 뒤 2019년 5월 대학살 당시 프랑스의 과오가 없었는지 규명하기 위해 르완다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다.

진상조사위는 2021년 3월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1981∼1995년) 시절 프랑스가 인종 차별적 학살을 부추기는 정권에 연루돼 있었다"며 "학살을 멈추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 등 무겁고도 중대한 책임이 있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가 르완다 정부에 무기를 공급하는 등 학살에 공모했다고 의심할만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해 5월 르완다 수도 키갈리의 집단학살 기념관을 직접 찾아 "프랑스가 대학살에 공모하지 않았다"면서도 당시 정부의 편에 섰던 만큼 '엄청난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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