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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적인 경찰서 토끼 사육…동물단체 '개체수 급증' 우려
기사 작성일 : 2024-05-01 12:00:35

정읍경찰서에 조성된 토끼 사육장


[촬영 나보배]

(정읍= 나보배 기자 = '밥 먹자'는 소리에 동그란 검은색 관 속에 숨어있던 토끼들이 바깥으로 나와 깡충깡충 뛰었다.

보슬보슬한 하얀빛을 내뿜으며 오물오물 건초를 먹던 토끼는 이내 배부른 듯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모래 위에 얌전히 앉았다.

토끼가 사는 곳은 전북 정읍경찰서 뒤편 토끼장.

정읍경찰서는 지난달 장명동에서 농소동 신청사로 이전하면서 토끼장을 만들고 토끼 3마리를 기르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해 조성한 공간이지만 토끼의 특성을 고려하면 부적절한 사육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읍경찰서에 조성된 토끼 사육장


[촬영 나보배]

◇ 동·식물 공존·정서 안정…관리자도 지정

정읍경찰서는 신청사에 철쭉이나 꽃사과, 산수유나무 등을 심고 그 옆에 토끼사육장을 설치해 동·식물이 공존하는 '육생비오톱'을 조성했다.

비오톱(biotope)이란 다양한 생물종의 공동 서식 장소를 말한다.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에 따라 3천㎡ 이상의 신축 공공기관 건축물은 친환경 건물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비오톱을 조성했다.

식물이나 곤충만 길러도 되지만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동물도 길러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다른 동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리가 쉬운 토끼를 선정, 177만원을 들여 사육장을 설치했다.

사육장에는 아름다운 정읍 내장산의 특징을 담아 '단'과 '풍', '미인'이라는 토끼 3마리의 이름이 적힌 팻말도 붙였다.

애초 5마리였지만 인근 관공서에서 '토끼를 분양해달라'고 요청해 암컷과 수컷 1마리씩을 나눠줬다.

정읍경찰서 관계자는 "격무에 시달리는 직원들이 잠시 깡충깡충 뛰노는 토끼를 보거나 먹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정서적 안정감을 얻는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직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늘막도 설치하고 토끼가 들어가 쉴 수 있는 굴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사료를 주거나 배설물을 치우는 일은 2명의 간부가 전담하고 있다.

당초 간부 7명이 번갈아 가며 관리를 맡기로 했다가 이들 중 동물을 좋아하는 2명이 전담을 자청했다고 한다.


정읍경찰서에 조성된 토끼 사육장


[촬영 나보배]

◇ 동물단체 "번식 속도 빠르니 중성화해야"…경찰서 "분양할 것"

특성상 번식 속도가 빠르고 영역 다툼이 심한 토끼를 집단 사육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토끼는 생후 4개월부터 임신이 가능하고 빠르면 한 달에 한 번 출산할 수 있다.

한 번에 5∼10마리의 새끼를 낳기 때문에 중성화하지 않으면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읍경찰서 관계자는 "아직 중성화하지 않았으며, 토끼가 새끼를 낳으면 원하는 이들에게 분양해줄 것"이라며 "개체수가 감당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면 여러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는 "그간 공공기관에서 토끼를 사육하는 행태를 고려했을 때 중성화하지 않는 것은 토끼를 학대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2년 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중성화하지 않은 토끼를 길렀다가 개체 수가 급속히 불어나자 산에 '방사'했고, 4년 전 서울 동대문구는 중성화하지 않은 60여마리의 토끼를 사육하다가 개체가 늘자 구민들에게 분양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임혜영 토끼보호연대 대표활동가는 "늘어나는 토끼를 감당할 만큼 분양 신청이 있을지 확신할 수 없고, 또 피분양자가 잘 기르는지 감시할 수도 없을 텐데도 '개체수가 늘면 분양하겠다'는 태도는 유기 동물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개체수가 늘어 공간이 포화하면 토끼들끼리 물고 뜯으며 싸울 것"이라며 "토끼를 중성화시키고, 만약에 대비해 치료비 등을 어떻게 마련할지 등의 체계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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