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 벗은 의사들
(익산= 나보배 기자
김병규 기자 = '2천명 의대 증원'의 효력 정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법원의 결정을 앞두고 정부와 의사단체들 사이의 공방이 거세다.
정부가 지난 10일 법원의 요청에 따라 의대 증원 근거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한 가운데 증원 규모가 합당한 절차를 거쳐 도출됐는지를 놓고 양측의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정부는 2천명 의대 증원을 위한 충분한 논의가 있었으며, 사회 각계가 참여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서 위원들 대부분이 증원에 찬성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의사단체 등은 보정심 회의는 '거수기' 역할을 한 것에 불과하며, 2천명 증원이 충분한 논의 없이 졸속으로 결정됐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의대 증원 반대"
(부산= 박성제 기자
◇ 보정심 회의 '주목'…"23명 중 19명 찬성" vs "일방적 발표"
13일 정부와 의료계, 법조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0일 집행정지 항고심을 심리 중인 서울고법 행정7부(구회근 배상원 최다은 부장판사)에 47건의 자료와 2건의 별도 참고자료를 제출했다.
재판부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이 법령상 어떤 절차를 거쳐 언제 최종 확정되는지, 증원 규모 2천명은 어떻게 도출했는지 등 의대 증원 근거 자료 제출을 정부에 요청했다.
정부가 제출한 자료 중 정부와 의사단체 양측의 해석이 특히 엇갈리는 것은 보정심 회의록과 회의 결과 자료다.
정부는 '2천명 증원'을 발표하기 직전인 지난 2월 6일 보정심 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 2천명 증원이 논의돼 결정됐다.
보정심은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보건의료에 관한 주요 정책을 심의하는 위원회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노동자·소비자·환자단체 등이 추천하는 수요자 대표, 의료단체가 추천하는 공급자대표와 보건의료 전문가, 정부 위원 등이 참여한다.
당시 회의에는 위원장을 포함해 전체 25명 위원 중 23명이 참석했다. 불참한 2명은 대한의사협회와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측이다.
회의록에 따르면 참석자 중 4명이 의대증원에 반대했다.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2018년 폐교한) 서남대 같은 학교를 20개 이상 만드는 것" 등의 발언도 나왔다.
하지만 나머지 19명은 증원에 찬성했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는 "참석자 중 19명은 2천명 증원에 찬성했고, 의사인 위원 3명을 포함한 총 4명이 반대했다"며 "반대의 경우에도 규모에 대한 이견으로, 증원 자체에는 찬성 의견이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신청인 측 대리인인 이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찬종)는 "'2천명'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문서는 증원분이 발표된 당일인 2월 6일 진행된 보정심 회의록이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전문위원회나 토론 없이 이 회의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브리핑에서 2천명이라고 할 것인데 무슨 의미가 있냐'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전했다.
출구없는 의정갈등, 깊어지는 환자들의 시름
서대연 기자
◇ 정부 제출 자료, 상당수는 기존 공개…'근거갖고 추진' 여부 쟁점
의사 측은 정부가 제출한 49건의 자료에 '2천명 증원' 추진의 근거가 담기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 변호사는 "한두 개를 제외하고는 거의 이미 공개된 언론 기사와 보도 자료였다. '2천명 증원'의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은 "의대 증원에 대해 의료계 및 다양한 이해관계단체와 충분히 협의했다"고 강조한다.
복지부는 "증원 발표 전인 1월 15일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에 적정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으나, 의협은 이를 외면했다"며 "2월 1일 의료개혁 4대 과제 발표 시에도 2035명 1만5천명의 의사가 부족하다고 천명했으니 의료계도 증원 규모를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제출한 자료 49건은 대부분 언론 보도나 보도자료 배포 등으로 이미 공개가 된 것들이다. 보도자료와 보도참고자료, 언론 기사, 공개된 보고서, 정부 브리핑 내용과 시민·소비자단체의 성명 등이 주를 이룬다.
또한 보정심과 정부-의협 간 '의료현안협의체' 발표 자료, 대통령의 관련 발언, 증원 확정 뒤 열린 교육부의 '의대정원 배정위원회' 회의 결과 정리 자료 등도 포함됐다.
쟁점은 결국 의대 증원이 근거를 갖고 절차를 갖춰 진행됐는지 여부로, 정부와 의료계가 석달 가까이 평행선을 달려온 이슈다.
의대 증원 추진을 놓고 정부는 의료계 등 각계와 충분히 논의해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으며, 연구 자료를 통해 증원 규모를 정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의사단체와 협의가 없었고, '2천명 증원' 규모 결정에 필요한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갖추지 못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의대 교수들은 이날 오후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법원 제출 자료를 토대로 '의대 증원이 과학적 근거 없이 추진됐다'는 점을 지적할 계획이다.
"의대 증원 반대"
(부산= 박성제 기자
◇ 법원 결정, 2천명 증원 '무산 vs 확정' 갈림길
서울 법원의 항고심 결정은 석달 가까이 끌고 있는 의대 증원 추진을 둘러싼 갈등에서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은 오는 16~17일께 증원 효력을 정지할지(인용), 소송 요건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지(각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을지(기각)를 결정한다.
법원이 각하 혹은 기각 결정을 하면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 초읽기에 들어가지만, 인용되면 정부는 내년도 의대 증원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다.
각 대학은 이달 말까지 대입 수시모집 요강에 의대 모집인원을 반영해 증원을 최종 확정해야 하는데, 어떤 결정이 나오더라도 양측 모두 재항고를 통해 결정을 뒤집기는 물리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각하 혹은 기각 결정이 나오면 내년도 의대 증원은 확정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들이 의대 증원을 반영해 학칙을 개정하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대입전형심의위원회가 기존에 대학들이 제출했던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을 승인해 각 대학에 통보하면 이달 말 혹은 다음 달 초 각 대학의 '수시모집요강' 발표와 함께 정원이 확정된다.
인용이 된다면 당장 내년도 입시의 증원이 무산된다. 정부는 내후년 입시에 증원분이 반영되도록 법적 절차를 밟으면서 증원에 대한 논의를 계속 이어 나갈 것으로 보이지만, 동력 악화가 불가피하다.
다만 이 경우에도 이탈 중인 전공의들이 복귀할지는 미지수다.
전공의들을 비롯한 의료계는 증원 유예가 아니라, 정부의 증원 계획 전체의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어 강경한 입장을 이어나갈 가능성이 있다.
전의비 교수 휴진 예고에도 붐비는 병원
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