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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의 덫] ③ 공기업도 당한 전세사기…손쉬운 먹잇감 된 다가구주택
기사 작성일 : 2024-07-17 07:01:19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다!"


[ 자료사진]

(대전= 양영석 기자 = 서울·경기 일대 전세사기가 빌라, 오피스텔, 아파트, 다세대·다가구주택 등에서 골고루 발생했다면 대전은 압도적으로 다가구주택에 집중돼 있다. 검찰 기소를 기준으로 보면 사실상 10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가구주택을 대상으로 한 전세사기 수법은 단순하면서도 국내 부동산 거래의 허점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대전은 지난해 기준 다가구주택 비율이 34%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1인 가구 비율 역시 38.5%로 가장 많았다. 다가구 원룸에 거주하는 20∼30대 사회초년생들이 주로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는 이유다.

대학가 주변, 원도심 등지에 즐비한 다가구주택은 전세사기범의 손쉬운 먹잇감이 됐다. 세입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건물 권리 정보가 제한된 맹점 때문이다.

전세사기범은 이점을 파고들었다. 복잡하고 특별한 수법이 필요 없이 '거짓말' 하나면 충분하다.

개별 등기가 가능한 오피스텔, 다세대 빌라와 달리 다가구주택은 1개 건물이기 때문에 집주인만 등기 설정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세입자는 집주인이 알려주지 않으면 다가구 방(호실)마다 설정된 보증금 전체 규모를 알 수 없다.

선순위 보증금이 없거나 적다는 임대인의 거짓말 한마디에 세입자는 속수무책이 된다.

천안에서 다가구 임대업을 하는 A씨는 25억원 상당의 오피스텔 건물을 구입할 때 13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선순위 보증금은 17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A씨는 새로운 세입자를 구할 때 근저당(대출) 액수만 알려주고, 선순위 보증금이 없다고 설명했다.

A씨의 말만 듣고 방을 계약한 세입자는 3천300만원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개인뿐만 아니라 공기업 금융기관도 범행 대상이 됐다.

대전의 한 부동산 법인대표 B씨는 자신의 다가구주택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전세 계약을 맺고 선순위 보증금을 낮게 속여 보고하는 방식으로 공사로부터 임대차 보증금 40억원을 지원받았다.

수급자들이 살 주택을 물색하며 먼저 주택 소유자와 전세 계약을 체결한 뒤, 입주 대상자에게 재임대하는 LH의 '전세임대주택 지원제도'를 악용해 공기업을 속였다.

경찰은 "LH도 선순위 보증금 규모를 몰랐고, 알아볼 생각도 못 했다"고 설명했다.

집주인의 속임수에 당하지 않으려면 개별 전세권 설정등기를 하거나, 확정일자 부여 현황, 전입세대 열람 등의 서류를 확인해서 선순위 보증금 규모를 살펴봐야 한다.

극단적으로 위와 같은 관련 자료 제공에 동의하지 않는 임대인은 일단 피하는 것이 다가구주택 전세사기를 예방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른바 다가구, 다세대, 오피스텔 등의 '깡통전세'도 기피해야 할 유형이다.

깡통전세란 건물 담보 대출과 세입자 보증금이 실제 건물의 가치보다 많은 것으로, 남아있는 건물의 가치가 텅 비었다는 뜻이다.

이런 깡통전세 대상 건물은 통상 돌려막기식 임대업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피해가 가장 크다.

정부가 지난 10일부터 세입자와 임대인 간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공인중개사들이 중개할 건물 선순위 보증금 규모, 임대인 체납 현황, 확정일자 현황, 전입세대 확인서 등을 세입자에게 의무적으로 설명하도록 공인중개사법 시행령·시행규칙을 개정했지만 집주인의 정보 공개 의무가 빠져 있어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간에 낀 중개사들 사이에선 벌써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역 한 공인중개사는 "집주인과 공범도 전혀 아니고 권리관계를 꼼꼼히 분석하고 중개했는데도, 사기에 휘말린 사람들이 있다"며 "확정일자도 안 주려는 임대인이 많은데 체납정보까지 파악하는 게 가능하겠냐. 다가구주택 중개가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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