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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으로 한국에 발묶인 수단인들 "제2의 조국 머물게 해달라"
기사 작성일 : 2024-08-24 09:00:34

난민 신청 (PG)


[안은경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홍준석 기자 = "우리는 전쟁과 폭력에서 도망쳤습니다. 우리에게 안전을 허락하고 망명을 허락합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23일 오후 서울역광장에 모인 수단인 17명은 이처럼 어색하게 번역된 문장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었다.

이들은 내전이 진행 중인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에 난민 비자(G-1)를 발급해달라고 요청하며 외쳤다.

"수단은 내전 중입니다. 인도적 문제를 겪는 수단인을 도와주세요. 제2의 조국에 머무를 수 있게 해주세요."

수단 내전은 작년 4월 15일 정부군과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 간 무력 충돌로 시작됐다. 2019년 8월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정부군과 RSF가 주도권을 놓고 다툼을 벌인 것이다.

1년 만에 1만6천명이 숨졌고 850만명이 고된 피란길에 올랐다.

이날 서울역광장에서 만난 압둔 모하메드(31) 씨는 2017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각각 오만과 튀르키예에서 유학 중인 여동생과 남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1년간 어학연수를 마친 모하메드 씨는 2018년부터 인천에 있는 중고차업체에서 일을 시작했고 고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내전이 발발하면서 귀국은커녕 한국에 머무르는 것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정부가 마비돼 여권을 갱신하지 못한 모하메드 씨는 비자 유효기간 만료로 한국에 불법체류하는 신세가 됐다.

3개월마다 법무부에서 출국 기한 유예를 허가받고는 있지만, 여권도 비자도 없어 일일 아르바이트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 있는 수단인 가운데 90%가 여권이 없는 상황"이라며 "난민으로 인정받아 한국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다가 내전이 끝나면 수단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23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난민비자 발급을 요청하는 집회 중인 수단인들 [촬영 홍준석]

난민법에 따르면 난민은 인종, 종교, 신분,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자기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받기를 원하지 않는 외국인이다.

같은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는 공포로 인해 한국에 입국하기 전에 거주한 국가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무국적 외국인도 난민으로 분류된다.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 인정을 받으면 한국 국민과 같은 수준의 사회보장, 기초생활보장, 교육보장을 받는다. 난민 인정자의 배우자 또는 미성년자인 자녀가 입국을 신청하는 경우 정부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입국을 허가해야 한다.

국내에는 난민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만만치 않다. 섣불리 인도주의적 관점으로 접근했다가 국내 안보와 치안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모하메드 씨를 비롯해 서울역광장에 모인 수단인들이 난민으로서 한국에 살게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법무부는 1994년부터 올해 7월까지 난민 인정신청을 한 외국인 11만5천41명 가운데 5만4천858명에 대한 심사를 마쳤다.

심사 결과 1천497명(2.7%)이 난민으로 인정됐고, 2천671명(4.9%)이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 둘을 합한 난민보호 비율은 7.6%다.

이는 국제사회 평균과 비교하면 4분의 1에 못 미치는 수치다.

유엔난민기구(UNHCR) 통계를 보면 최근 30년(1994∼2023년) 동안 난민 인정심사를 받은 3천49만7천176명 가운데 973만975명(31.9%)이 난민으로 인정되거나 '보충적 보호'(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필요성이 있어 보호를 부여하는 것) 대상자로 분류됐다.

글로벌 조사 결과 국내의 경우 난민에 대해 비우호적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강하지만 국경 폐쇄처럼 극단적 수준의 배타적 인식에까지 이른 비율은 아직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작년 4월 21일부터 5월 5일까지 전 세계 29개국의 18세 이상 2만1천816명을 조사한 결과 한국인 응답자 가운데 '전쟁이나 박해로 나라를 떠나는 난민을 받아줘야 한다'는 문항에 동의한 비율은 55%로 전체 결과(74%)보다 19%포인트(p) 낮았다.

다만 '국경을 폐쇄해 난민 수용을 막아야 한다'는 질문에 동의한 비율은 39%로 전체 결과(43%)보다 오히려 낮은 비율을 보였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난민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무관심으로 이어져 최소한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상태를 방치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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