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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증환자 본인부담금 인상에 "스스로 판단 힘들어" 지적도
기사 작성일 : 2024-08-25 08:00:37

권지현 기자 = "TV에는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것만 나오지만, 사실 땀을 뻘뻘 흘리는 것도 심근경색의 증상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의료인이 아닌 환자가 어떻게 본인 상태의 경중을 자가진단할 수 있을까요?"

조석주 부산대학교 응급의학과 교수는 25일 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다른 대안 없이 무조건 경증 환자 부담금을 올리면 의료비가 부담되는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아파도 참다가 위급해지는 사람이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 "경증환자,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가면 본인부담 늘린다"


[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처럼 의료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응급실 과밀화 해소와 경증환자 분산을 위해 발표한 응급의료체계 유지 대책을 두고 비의료인, 특히 취약계층 환자들을 고려하지 못한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23일 비응급·경증 응급 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외상센터, 전문응급의료센터 등을 내원할 경우 응급실 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을 90%로 올리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현재 본인부담률은 50∼60% 수준이다.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응급실 의료 공백이 큰 상황에서 코로나19 재확산 등으로 응급실에 내원하는 경증 환자가 늘어나자 중증·응급 환자를 위해 경증 환자를 단기에 분산시키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비의료인인 환자가 본인 상태의 경중과 응급도를 판단하기 힘들어 자칫하면 적시에 응급 처치를 받지 못하고 위급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조 교수는 "동네 병의원이 문 닫은 오후 8시 갑자기 아이가 열이 난다고 생각해 보자. 해열제를 먹고 내일 외래로 가도 될지, 아니면 당장 응급실로 가야 할지 부모가 판단할 수 있겠나"라며 "환자가 일단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는 이유는 '큰 병일 수도 있겠다'라는 걱정 때문인데 이런 경우에 대한 대안도 없이 부담률을 올려서 과밀화를 해소한다는 것은 일차원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환자가 본인이 감기 증상인 걸 확신하면 굳이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겠나"라며 "겁도 나고 뭔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니까, 또는 지역 응급의료기관에 갔을 때 처치가 되지 않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권역응급의료센터 등으로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응급실 인력부족 대책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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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책이 응급실 진료비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이들에게는 효과가 없고, 결국은 의료비가 부담되는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응급 처치를 놓치는 사례가 나올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조 교수는 "미국에서는 구급차 비용이 비싸서 아파도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참으려는 사람들이 많아 위급한 증상이 있으면 구급차를 부르도록 별도의 교육이 필요한 실정"이라며 "본인부담률을 무작정 많이 올리게 되면 빈곤층은 '응급실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범 순천향대 서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도 "비용으로 장벽을 만들겠다는 것은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겠으나 이에 대한 부담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없다"며 "일반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긴 하지만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취약계층만 아파도 병원에 가기를 꺼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 대표는 "실손보험 처리만 늘어날 수도 있다. 돈 있는 사람이나 실손보험 가입자는 그냥 돈을 더 내고 가면 된다"면서 "그런 구조가 아니라 응급하지 않으면 못 오도록 만드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부, 응급실 인력부족 대책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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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경증 환자들이 대형병원 응급실로 무작정 향하는 대신 신뢰하고 이용할 수 있는 '비응급 신고 대응 창구'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아픈 환자에게 다른 대안을 만들어 준 다음 부담률을 올리든지 해야 하지 않겠나"며 "과거 응급의료정보센터 '1339' 상담전화가 수행했던 것처럼 비응급 신고에 대응하고 전원을 지원하는 기능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119는 구급차 출동과 연계되므로 신고자에게도 부담이 되고 신고 접수자에게도 (미출동에 대한) 위험 부담이 있다"며 "심리적 부담 없는 의료 상담을 통해 일차적으로 비응급 환자를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박 교수는 "일본에는 '7119'라는 일반 의료 상담 전화가 따로 있어 사람들이 '내가 증상이 이런데 응급실에 가야 하나', '대형병원 응급실 말고 갈 수 있는 병원은 어디가 있느냐' 등을 물어볼 수 있고 여기에 대답하는 의료진이 상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1339를 대신해 만들어진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은 아직 고도화되지 않아 1차 의료 상담이나 병원 연결 등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응급실에 가야 할 사람은 놓치지 않고, 안 가도 되는 사람은 안 가게 걸러주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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