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aily

우크라가 급습한 러 쿠르스크는 히틀러 울린 '2차대전 격전지'
기사 작성일 : 2024-08-29 16:00:59

소련제 T-72 탱크에 탄약을 장착하는 우크라 병사


[AFP . 재판매 및 DB 금지]

김상훈 기자 =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6일부터 급습 작전을 진행 중인 러시아 남부 쿠르스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침략자인 독일 나치군을 상대로 가장 중요한 승리를 거둔 곳 중의 일부라고 미국 CNN 방송이 역사학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29일 CNN에 따르면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나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의 유럽 정복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일부 역사학자들은 수백만 명의 군대와 수천 대의 탱크와 전차가 동원된 1943년 7월 5일부터 8월 23일까지 쿠르스크 인근 전투가 유럽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였다고 평가한다.

미국 뉴올리언스에 있는 국립 제2차 세계대전 박물관 산하 전쟁 및 민주주의 연구 기관인 제니 크레이그 연구소의 마이클 벨 대표는 "쿠르스크에서의 승리로 소련은 동부에서 주도권을 잡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유지했다"고 말했다.

1943년 봄 히틀러 군대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거의 100만명에 가까운 병력을 잃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통해 볼가강변 도시를 점령하고 소련군을 패주하게 하며 유럽을 완전히 정복하는 데 필요한 힘을 얻으려던 시도가 무산된 것이다.

당시 소련 지도자 요시프 스탈린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스탈린그라드를 방어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1942년 늦여름과 가을에 스탈린그라드로 진격했던 독일군은 겨울에 소련군에 밀려나기 시작해 이듬해 2월에 항복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동부 전선에서 밀려난 히틀러의 장군들은 주도권 회복 방법을 모색했고, 독일군 방어선에서 남북으로 150마일가량 뻗은 소련군의 돌출부를 막기로 결정했다.

이 돌출부는 백만명 이상의 병력이 방어하고 있었는데 그 중심이 이번에 우크라이나군이 급습한 쿠르스크다.

나치 장군들은 '시타델 작전'으로 명명한 쿠르스크 급습을 봄에 하고자 했지만, 히틀러는 최신 전차를 전선에 보내려 작전 개시 시점을 연기했다.

덕분에 소련군은 방어를 준비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오하이오대 역사학 교수이자 전직 미국 기갑기병대 사령관인 피터 맨소어가 전했다.

독일은 그 돌출부를 점령하기 위해 최대 80만명의 병력과 약 3천 대의 탱크를 투입했지만, 어마어마한 방어망에 직면했다고 한다.

소련군은 무려 3천마일(약 4천820㎞)의 전차 방어용 도랑을 파고 40만개의 지뢰를 깔았으며, 보유한 장갑차의 75%와 병력 40%를 쿠르스크 돌출부에 배치하는 등 겹겹이 방어선을 구축했다.

결국 히틀러가 동원한 신형 전차는 소련 무기보다 강했지만, 스탈린 군대는 수적으로 우위를 점했다고 제2차 세계대전 박물관의 벨 대표가 설명했다.

일부 학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쿠르스크 전투에서 소련군은 200만명이 넘는 병력과 7천 대 이상의 전차를 보유했다고 한다.

여기에 같은 해 7월 9일 연합군이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 상륙하면서 소련군의 수적 우위는 더 확연해졌다. 히틀러는 동부 전선에 배치했던 일부 병력을 빼내 이탈리아로 이동시켜야 했다는 것이다. 결국 남은 독일군으로는 소련의 방어선을 돌파할 수 없었다는 게 학자들의 설명이다.

벨 대표는 "독일군은 이 전투를 위해 집결시켰던 것만큼 많은 병력을 다시는 모으지 못했다"며 "결국 쿠르스크는 독일군 기갑부대를 제거함으로써 독일군이 끝까지 러시아 전선을 방어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