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aily

미술 공부 석달 만에 전국대회 입선한 고3 발달장애 작가
기사 작성일 : 2024-09-16 10:00:33

작업 중인 유강빈(18)군


이미령 기자 = 13일 오전 서울 성북구 정릉동 화실에서 유강빈 군이 전시회에 출품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미령 기자 = "제가 화실에서 작업하고 있는 그림이 가장 멋있어요. 꼭 작가처럼 보이잖아요!"

가을비가 내린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성북구 정릉동 한 화실에서 만난 유강빈(18)군은 붓끝으로 자신의 그림을 가리키며 당찬 목소리로 말했다.

3급 지적장애를 가진 강빈군은 이달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출품할 그림의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었다.

30호 캔버스(90.9㎝X72.7㎝)를 네 개 공간으로 나눠 작업한 그림에는 강빈군 자신과 그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한 순간이 담겨 있었다.

룸메이트 형과 함께 길을 걷거나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무대에 올라 상을 받는 모습, 수사님과 놀러 간 바다에서 사진을 찍으려 포즈를 취하거나 홀로 화실 이젤 앞에 선 자기 모습이다.

무연고 장애 아동이던 강빈군은 7살 무렵 장애인 공동 생활가정(시설)인 예수성심우리엄마네에 맡겨져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강빈군은 평소에도 시설 식구들과 함께 놀러 가거나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사진으로 찍고 그것을 그림으로 옮기곤 했다.

"가족들이랑 미술 전시회에 갔는데 그림들이 너무 선명하고 아름다워서 저도 관심이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재활 치료의 하나로 10여년간 미술 치료를 받았지만 정식 미술 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지난해 시설에 새로 온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그의 그림에서 '남다름'을 발견했다.

사회복지사 박지혜씨는 "강빈이가 센터에서 그려온 그림을 봤는데 예사롭지 않았다"며 "더 일찍 알아채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얼른 미술 공부를 시켜주자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빈군은 그렇게 밀알복지재단의 발달장애인 미술교육 지원 사업인 '봄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됐고, 작가로 선발되면서 올해 4월부터 전문 강사에게 미술 교육을 받고 있다.

전문 교육을 시작한 지 석 달 만인 지난 7월에는 '전국장애청소년예술제' 미술 부문에서 4위의 성적을 거뒀다.


여의도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


이미령 기자 = 유강빈(18)군이 여의도 공원에서 룸메이트와 자전거 타는 모습을 그린 그림.

색종이를 가위로 오려 붙인 듯, 명암을 넣지 않고 평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강빈군 작업의 특징 중 하나다.

미술 교육을 담당하는 화실 권은정 원장은 "노랑, 주황, 핑크 같은 화려한 색을 이렇게 과감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다"며 "사람의 눈이나 코, 입, 또는 옷의 단추나 신발 끈 같은 아주 작은 디테일에 굉장히 공을 들이는 것도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는 몇 시간이고 앉아 놀라운 집중력으로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도 보였다. 시설 사회복지사 선생님에게 연락하는 것도 잊고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느라 시설이 발칵 뒤집히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요즘은 화실 선생님과 이미지 확장을 통해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룸메이트 형과 있는 모습'을 그린다는 구상에서 나아가 공원, 그중에서도 여의도 공원에서, 벚꽃이 휘날리는 봄에,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떠올리는 식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낸 강빈군의 작품은 다른 발달장애인 미술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오는 25일부터 30일까지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온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강빈군은 이번 전시회에 나가는 소감을 묻자 "너무 떨리고 긴장된다"며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고 기뻐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고교 3학년생인 강빈군은 내년 졸업을 앞둔 만큼 앞으로의 행보도 고민 중이다. 대학 진학 등에 대해 정확히 계획 중인 것은 없다지만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묻자 망설임 없이 "네"라고 대답했다.

"그림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갈 수 있게 열심히 노력하고 꾸준한 작가가 되고 싶어요. 나중에는 착실한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 겁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