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호 존스홉킨스대 교수
[존스홉킨스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워싱턴= 김동현 특파원 = "이론적으로 인간이 화성을 갔다 오려면 2∼3년 정도 걸리는데 그 기간에 뼈와 근육이 50% 이상 손실되면서 10∼15년은 늙게 된다. 그런 문제를 해결할 우주 의학이 개발돼야 심우주 탐사가 가능하다."
인류가 먼 우주 공간까지 탐사하려면 일단 더 빠른 우주선을 개발하고 연료 공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김덕호 의생명공학과 교수는 그 문제 못지않게 무중력 환경에 노출된 우주비행사의 신체 노화를 극복하는 게 관건이라고 지난 23일(현지시간) 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김 교수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국립보건원(NIH)이 무중력에 가까운 미소중력(microgravity) 환경이 인간의 장기와 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후원하는 '티슈 칩스 인 스페이스'(Tissue Chips in Space)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 10여년간 우주에서 한 달, 길게는 1년을 지내고 돌아온 우주비행사들이 심장 질환이나 골다공증, 근육 감소 등 노화 관련 질환을 많이 겪었다"면서 "사람들은 우주의 무중력 환경이 노화를 촉진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 원리나 이유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 교수가 이끄는 존스홉킨스대 연구팀은 그 원리를 연구하기 위해 인간의 줄기세포로 심장근육 세포를 만들어 실제 성인의 심장근육과 유사한 '인공심장 칩'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2020년 3월 48개의 '인공심장 칩'을 스페이스X 로켓에 실어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보냈고, ISS에서 30일간 관찰한 뒤 다시 지구로 가져와 지구에 둔 인공심장근육과 비교했다.
그 결과 우주에 있던 심장조직은 지구에 있던 심장조직에 비해 수축력이 현저히 감소하고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이 증가했다.
지구에 있는 심장조직은 약 1초마다 박동이 있었지만, 우주에서는 박동 간격이 거의 5배로 늘었다.
또 근육 세포의 수축을 돕는 단백질인 근절이 짧아지고, 세포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이 약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인공심장 칩'을 들고 있는 김덕호 존스홉킨스대 교수
[존스홉킨스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런 연구 결과는 지난 23일 발간된 과학 저널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김 교수는 이 연구 결과를 우주 탐사뿐만 아니라 지구에서 심장 노화를 연구하고 치료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과학자들이 신체 노화를 연구할 때 3개월 된 어린 쥐랑 24개월 된 고령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다면서 "사람이 50, 60, 70대에 겪는 노화 질환을 24개월 된 쥐로 모델링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다"라고 말했다.
인간의 노화를 연구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노화가 수십년에 걸쳐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주에서는 훨씬 짧은 기간에 인체 세포의 노화 현상을 관찰하고 치료제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는 "노화 연구와 치료제 개발은 그 효과를 검증하려면 10, 20, 30년이 걸리기 때문에 노화 모델을 만드는 게 굉장히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한 달 동안 우주정거장에서 실험해 지구에서 심장이 노화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을 밝혀냈기 때문에 우주환경과 유사한 무중력 장치를 이용해 단기간에 노화 모델을 만들고 단기간에 치료 후보제의 효능 같은 것들을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노화 연구에 있어서 우주는 시간이 지구와 다른 속도로 흐르는 연구실인 셈이다.
김 교수는 이런 무중력 환경의 가치 때문에 다국적 제약사들이 우주에서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로 유명한 미국 제약사 머크는 2017년 항암제 주성분인 펨브롤리주맙을 ISS로 보내 단백질 결정 최적화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무중력 환경에서 더 균일하고 점도가 낮은 결정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인공심장 칩 실험을 하는 우주인
[PNAS / Deok-Ho Kim et al.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 교수팀은 2023년 3월에 인공심장 칩으로 2차 우주 실험을 했다.
이번에는 1차 실험 때 나타난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을 함께 우주로 보내 실험했고, 그 결과 노화에 효과가 있는 약물 3개를 식별했다.
3개 약물은 원래 다른 용도로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으나 김 교수팀은 노화 치료 용도로도 쓸 수 있게끔 특허를 냈다.
김 교수팀은 내년 가을 미국과학재단(NSF)과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3차 실험을 하는데 그때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신약을 실험할 계획이다.
김 교수는 연구 결과를 노화에 따른 심장 질환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근육량과 근력이 감소하는 근감소증 치료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는 특히 요새 인기가 많은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의 경우 지방뿐만 아니라 근육까지 감소시키는 부작용이 있어 근감소증 치료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이 든 근감소증 환자뿐만 아니라 비만 치료제를 복용하는 젊은 사람들도 근육 감소와 관련된 약을 같이 복용해야 하는 새로운 시장이 생겼다"면서 "이제 근감소증은 대부분 사람이 걸린다고 보면 되는데 근력이 감소하는 것뿐만 아니라 치매나 심장 질환, 골다공증이라든지 우리 몸의 여러 장기가 노화되면서 생기는 질병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포스텍(포항공과대) 기계공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기계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이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바이오 융합 연구를 하면서 의료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미국 존스홉킨스의대에서 의생명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학교 4학년 때 부친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게 심장 질환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우주 분야 연구에 더 관심을 가지기를 당부했다.
그는 "미국의 학생들은 어릴 때 우주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동경으로 과학을 하게 된 친구들이 많다"면서 "한국에도 우주청이 만들어졌고, 우주 과학기술은 국방과 산업 파급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우주 과학기술에 관심을 많이 가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덕호 존스홉킨스대 교수와 연구팀
[존스홉킨스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