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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수도 울산서 시의장 하나 못 뽑다니…" 시민들 장탄식
기사 작성일 : 2024-11-18 18:00:04

울산시의회 본회의 전경


[울산시의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 허광무 기자 = 제8대 울산시의회 후반기 의장을 선출하는 일이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시민을 대표하는 시의원들이 자리싸움만 하며 허송세월한 것이다.

자리 욕심에서 촉발된 내홍, 미숙함으로 사태를 증폭시킨 의회 행정, 문제를 해결할 능력 없는 정치권까지. 무능과 이기심의 종합선물 세트를 보여주는 시민 대의기관의 현주소가 부끄럽다고 시민들은 한탄했다.

◇ 자리싸움에 내홍, 규정도 몰랐던 의회행정…'총체적 난국'

사태의 발단은 6월 18일 열린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 총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20명 전원이 참석한 총회에서는 이성룡·안수일 후보가 의장 도전 의사를 밝혔다. 3차 투표까지 '10대 10' 동수로 승부를 가리지 못해 선수(選數·시의원 당선 횟수)에서 앞선 3선의 이 의원이 재선의 안 의원을 제치고 후보로 결정됐다.

이 결과에 불복한 안 의원이 의장 후보 등록을 강행하면서 내홍이 처음 도드라졌다.

두 의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파벌이 맞서며 본회의 표결에서도 재적의원 22명이 '11대 11'로 갈라졌지만, 또 한 번 선수에서 앞선 이 의원이 의장으로 선출되며 갈등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본회의 투표 때 이 의원을 뽑은 투표지 중 기표가 두 번 된 1장이 발견되면서 유·무효를 놓고 혼란은 더 커졌다.

당시 본회의를 주재한 의장과 의회사무처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유효하다'는 해석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본회의 종료 후 '울산시의회 의장 등 선거 규정'에 '2개 이상 기표가 된 것을 무효로 간주한다'는 조항이 있는 점이 확인됐다. 선거 절차를 관장해야 할 의회사무처조차 이 규정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다.

안 의원은 이를 근거로 의장 선출 결의가 무효임을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본안 판결 때까지 의장 선출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도 함께 신청했다.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 결정했고, 이 의원은 채 열흘도 안 돼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미숙한 행정으로 문제의 빌미를 제공한 책임을 물어 의회사무처장이 교체됐고, 안 의원은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이성룡(왼쪽)·김기환 울산시의원


[울산시의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재선거 앞두고도 자리다툼 재현…국민의힘, 뒤늦은 수습

국민의힘 중앙당이 '의장 공백 사태를 수습하라'는 지침을 내리면서 재선거가 결정됐고, 이달 1일 의장 후보 선출을 위한 의원 총회가 또 한 번 열렸다.

이번에는 이 의원과 함께 전반기 의장을 지낸 김기환 의원이 후보 신청을 했고, 19명이 참석한 총회에서 10표를 얻은 이 의원이 다시 의장 후보로 선출됐다.

그런데 약 5개월 전과 같은 촌극이 판박이처럼 재현됐다.

김 의원이 의장 선거에 출마하고자, 총회 결과에 아랑곳없이 후보 등록을 강행한 것이다.

울산시당 차원에서 '결과에 승복한다'는 내용의 서약서까지 미리 받았던 터라,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적잖은 파장이 일었다.

중앙당은 김 의원을 해당 행위자로 지목하며 '징계 조치를 개시하라'고 주문했고, 울산시당은 윤리위원회 회부 등 징계 절차를 예고했다.

그러나 거세지는 시민 비판에 부담을 느낀 국민의힘은 두 의원 모두 후보를 사퇴하도록 하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시의회는 후보 등록부터 관련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한다는 계획인데, 현재 진행 중인 회기 일정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하면 연내 의장 선출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


기자회견 하는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


[울산시의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시민으로서 부끄러워", "지방의회 필요하나"…비판 쏟아져

'산업 수도'를 자부하는 울산시민의 대의기관은 반년간 수장조차 뽑지 못하는 식물기관으로 전락했다. 보수 성향이 강한 울산에서도 이번 사태를 놓고는 '국민의힘 책임론'을 꼬집는 목소리가 높다.

한 50대 시민은 "기초의회도 아닌 광역의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산업 수도로 재도약하자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시점인데, 정작 이를 이끌어야 할 정치인들의 수준이 이 정도라는 사실이 시민으로서 부끄럽다"고 지적했다.

다른 30대 시민도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편인데도, 자리싸움한다는 보도는 수개월째 보는 것 같다"면서 "이런 지방의회가 꼭 필요한 것인지 의구심도 든다"고 허탈해했다.

야권도 일제히 국민의힘의 무능과 실책을 성토했다.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은 18일 "시의원 자리다툼의 본질이 국민의힘 국회의원과 울산시장을 둘러싼 권력 다툼이라는 소문도 있어 더 기가 막힌다"고 비난했다.

진보당 울산시당은 "국민의힘과 울산시의회를 강력히 규탄하며, 울산시정의 주인은 몇몇 의원이 아니라 울산시민이라는 것을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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