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발령과 해제 사태 이후 예상 밖으로 선방해온 증시가, 윤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이 불발된 뒤인 9일 정국 혼란 장기화에 대한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급락하고 말았다.
수출 경기 둔화와 트럼프발 리스크에도 저가 매수세로 바닥을 떠받치던 개인 투자자들마저 하루에 1조원이 넘는 투매 양상을 보이면서 증시의 동력이 말라버린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은 단기적 변수로서 펀더멘털(기초여건)에 우선할 수 없는 만큼 정국 해법 도출 이후 증시가 반등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코스피 2.78% 급락
임화영 기자 = 코스피와 코스닥이 급락한 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종가가 표시돼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종가는 전 거래일 대비 67.58포인트(2.78%) 내린 2,360.58, 코스닥 지수는 전장 대비 34.32포인트(5.19%) 내린 627.01로 마감했다. 2024.12.9
이날 코스피는 탄핵 대치 정국의 장기화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면서 장중 내내 하락폭이 커진 끝에 2.78% 내린 2,360.58로 마감했다.
코스닥지수는 5.19% 하락한 627.01로 낙폭이 훨씬 크다.
이날 낙폭은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진 지난 4일 이후 4거래일 중 가장 크다.
4~6일 사흘간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100억원을 순매도한 외국인은 이날 1천억원 규모 순매수로 돌아섰다. 외국인은 이날 코스피200선물도 2천억원 이상 순매수했다.
반면 4일과 5일 각각 3천400억원, 1천600억원을 순매수한 개인은 지난 6일 5천800억원을 순매도한 데 이어 이날은 8천900억원을 순매도했다.
개인은 이날 코스닥 시장에서도 3천억원을 순매도하며 하루 만에 총 1조1천900억원을 내다 팔았다. 지난 6일까지 포함하면 이틀간 양대 국내 증시에서 개인 순매도액 규모는 무려 1조9천500억원에 달한다.
하반기 내내 이어지는 외국인의 '셀코리아'에 이어 개인의 투매 양상까지 겹치면서 당분간 지수 반등은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박성제 하나증권 연구원은 "탄핵안 국회 표결 무산에 오늘 국내 증시가 급락했다"며 "당분간 정치적 불확실성이 유지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모든 업종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향후 정국 시나리오별로는 탄핵안 가결과 헌재 인용, 조기 대선 국면으로의 전환이 그나마 가장 증시 친화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신한투자증권 투자전략부는 이 경우 정치 리스크 경감을 반영해 코스피 전망치를 2,400~2,700으로 제시했다.
반면 현재처럼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여야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 저항이 확대할 경우 코스피는 하향세가 장기화하며 2,300~2,600선을 형성할 것으로 우려했다.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2차 비상계엄 발령 등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경우 코스피는 2,200선까지 밀려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즉각퇴진 외치는 부산 시민들
(부산= 손형주 기자 = 8일 오후 부산 서면 젊음의거리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즉각퇴진부산시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주최 측(윤석열정권 퇴진 비상부산행동) 추산 1만여명의 시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2024.12.8
이 같은 전망과 별개로, 앞선 두 차례 탄핵 사태를 볼 때 최근의 증시 하락이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 이후 헌법재판소의 기각까지 코스피는 11.6% 하락했으나,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 의결 이후 헌재의 인용까지 코스피는 3.6% 상승한 것을 볼 때 탄핵이 지수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반론이다.
이들은 2004년의 경우 미국과 중국의 동반 기준금리 인상이 증시 하락의 배경이 됐고, 2016년의 경우 수출 경기 호조가 증시 상승의 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는 "과거 탄핵 사례에서 금융시장은 탄핵소추안 가결 시 단기적으로 불확실성 해소로 반응했으며 이후에는 글로벌 경기 사이클에 연동되는 흐름을 보였다"고 분석하고, 연간 전망치인 원/달러 환율 상단 1,450원, 코스피 하단 2,250을 유지했다.
정치적 불안정성이 해소되고 나면 재정 확대 정책에 대한 기대감, 내년 기업 이익 추정치 하향의 마무리 가능성, 미국의 감세 및 규제 완화 등이 증시 반등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1월 국내 수출 증가율이 전년 대비 1.4% 증가하는 데 그쳐 올해 들어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둔화세를 보이는 점은 불안 요소지만, 국내 수출과 밀접한 관계를 보이는 미국 공급관리협회(ISM) 제조업 지수와 중국 주택거래량의 최근 반등세는 긍정적으로 해석된다.
내년 미국과 중국의 통화정책이 완화적으로 예상되는 것도 증시에 희망이 될 수 있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현 상황에서 내년 미국과 중국 통화정책이 긴축으로 선회한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며 "정치 불안의 돌파구는 통화 확장 정책과 수출 경기 개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