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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뉴] 부정선거와 정신승리
기사 작성일 : 2024-12-17 08:00:06

김재현 선임기자 =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둔 2월15일 유일한 야당 후보였던 조병옥이 미국에서 신병 치료 중 사망했다. 이에 따라서 집권 자유당 후보인 대통령 이승만의 당선이 확정됐다. 문제는 부통령 선거였다. 자유당은 이기붕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으나 표심은 민주당 후보인 장면에게 한참 기울어있었다. 이승만은 당시 85세 고령이었기에 장면이 권력승계 서열 1위인 부통령으로 선출될 경우 정권이 야당에 넘어갈 판이었다.


3.15 부정선거 자행된 제4대 대통령선거 선거벽보


조보희 기자 =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제4대 대통령선거 선거벽보. 이승만 대통령 후보와 이기붕 부통령 후보 선거벽보. 3.15 부정선거로 4.19 혁명을 유발해 무효 선거가 됐다. 1960.3.15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위기감을 느낀 자유당 정권은 대선 1년 전 교통부 장관이었던 최인규를 내무장관으로 세우며 부정선거 작업에 들어갔다. 최인규는 경찰서장과 시장·군수를 불러모아 "교도소 콩밥을 먹어도 내가 먹는다"는 망언을 쏟아내며 선거 개입을 독려했다. 전체 유권자의 40%가량의 표를 자유당 지지표로 만들어 투표함에 미리 넣어두는 '4할 투표', 투표인을 3인, 5인, 9인으로 한 데 묶어 기표된 용지를 서로 보여주도록 하는 공개투표 등 기상천외한 행동 지침이 하달됐다.

▶ 한술 더 떠 이승만은 조병옥 사망 이틀 전인 2월13일 갑자기 대국민 담화를 내고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돼도 야당 부통령이 당선되면 선거 결과에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조폭들까지 선거에 동원한 정권의 만행에 국민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지만, 부정선거는 실행에 옮겨졌다. 거리로 뛰쳐나온 분노한 국민을 향해 이승만은 "이 난동에는 공산당이 있다는 혐의" 등을 운운하며 책임을 부인하더니 유혈사태로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4월27일 사임서를 내고 미국으로 떠났다.

▶ 이승만 정권의 파멸을 불러온 부정선거가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64년 만에 출현해 민심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것도 국가원수가 부정선거를 입에 올려 파장이 크다. 2020년과 올해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북한과 중국 등 국내외 반국가세력에 의한 사전투표함 바꿔치기와 선관위 전산시스템 해킹으로 압승을 거뒀다는 게 음모론자들의 주장인데 "선거 관리 전산시스템이 엉터리"라는 윤 대통령의 가세로 잔뜩 고무된 표정이다.


尹, 탄핵소추 담화 "선관위 관리시스템 엉터리"


이진욱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14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 2024.12.14

▶ 지난 4월 총선에선 역대 최다인 약 14만명이 선거관리에 투입됐다. 수개표로 진행된 개표 관리원만 약 8만명이었다. 투표소는 전국 1만 4천259곳, 개표소는 254곳에 마련됐고, 각 정당이 파견한 참관인과 일반인이 투·개표 과정을 감시했다. 부정선거가 사실이라면 '반국가세력'이 여야로 지지성향이 나뉜 십수만 선거 관리자를 포섭하거나 수많은 선관위 직원들이 작당모의해 사전투표부터 수개표까지 모든 결과를 조작했다는 얘기가 된다.

▶ 음모론자들이 선거부정을 주장하려면 '내로남불'의 벽부터 넘어야 한다. 이들은 총선 무효를 주장하면서도 2021년 서울시장 보선과 이듬해 대통령선거 및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내리 승리한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면서 선거에서 지면 부정선거라고 우기는 태도를 보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일종의 '정신승리'에 빠진 음모론자들을 투·개표 작업에 투입해보면 어떨까? 하나같이 이들의 입에서 "직접 눈으로 보니 부정선거가 아니었다"는 말이 나올 게 틀림없다. 다만, 반국가세력에 포섭된 배신 변절자니, 컴퓨터도 모르고 속임수에 잘 넘어가는 바보 멍청이니 하는 손가락질 정도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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